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관객석 앞에 앉은 연출, 관객과 사진 찍는 배우… '어디까지 극 중이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관객석 앞에 앉은 연출, 관객과 사진 찍는 배우… '어디까지 극 중이지?'

입력
2022.04.06 14:35
19면
0 0

80년대 정치 풍자극 '불가불가'
'개인의 선택'에 집중한 각색으로 돌아와
메타연극 장치 극대화로 관객에 던진 공

이달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연극 '불가불가' 무대 리허설에서 서울시극단 배우들이 춤을 추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달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연극 '불가불가' 무대 리허설에서 서울시극단 배우들이 춤을 추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공연 시작 5분 전, 관객들이 자리를 찾아 앉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 보통 비어 있는 무대 위에도 사람들이 오간다. 스태프인가 했더니, 웬걸 배우들이다. 목을 풀던 배우는 언제 공연이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입을 뗀다. 관객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가 하면, 극 중 연출가는 관객석 바로 앞에 앉아 관객을 등지고 연기한다.

지난달 26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서울시극단의 연극 '불가불가'의 시작은 이처럼 평범하지 않다. 메타연극 방식을 최대로 활용한 작품이라서다. 메타연극은 극적 환상을 의도적으로 깨트리면서 관객에게 지금 보는 이 극이 실재가 아니라 연극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일깨우며 진행된다. 무대 위 허구의 이야기를 실재라고 관객을 설득하는 전통적 연극 방식과는 다르다. 1980년대 화제작이었던 '불가불가'의 2022년 버전의 핵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공연 하루 전 극장 리허설이 배경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늑약 등 암울했던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배우들을 통해 은유적으로 80년대 정치 문제를 고발한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불가불가(不可不可)'만 웅얼거리며 찬반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극중극의 인물은,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하는 질문을 던진다. ('불가불, 가'로 띄어 말하면 찬성을, '불가, 불가'로 띄어 읽으면 반대를 의미한다.)

이달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연극 '불가불가' 무대 리허설 중 서울시극단 배우들이 어두운 조명 속에서 연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달 1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연극 '불가불가' 무대 리허설 중 서울시극단 배우들이 어두운 조명 속에서 연기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불가불가'는 극작가 이현화에게 서울연극제(1987년), 동아연극상·백상예술대상(1988년) 희곡상을 모두 안긴 작품이지만, 2022년 우리에게 바로 와닿긴 어려웠다. 이철희 연출가는 40년의 격차를 뛰어넘으려 메타연극을 활용했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의 정치 풍자 메시지가 오늘의 관객에게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오늘을 사는 관객 개인에 집중해 각색했다"고 설명했다. 메타연극 방식은 관객이 연극에 몰입하지 않고 오히려 극과 현실 사이에서 혼돈스러운 세상 속에서 선택의 무게를 짊어진 자신의 삶을 사유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원작의 극중극 형식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 선택이다.

이 때문에 공연 내내 관객은 혼란스럽다. 공연 시작 후에도 극 중 연출이 리허설을 하면서 조명 사인을 주기 전까지는 공연장 관객석 조명이 꺼지지도 않고, 배우가 관객석 복도를 누비는 일이 예사다. 커튼콜마저도 연극 속 상황인지 실제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분명 친절한 연극은 아니다. 그럼에도 선택의 연속인 삶을 사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100분의 시간은 가치있다.

유머러스한 연출과 서울시극단 배우들의 명연기도 볼 만하다. '닭쿠우스', '조치원 해문' 등을 통해 "허허실실 연출"(서울시극단 문삼화 예술감독)이라고도 불리는 이철희 연출가는 이번에도 깊은 철학을 콩트를 보는 듯한 유쾌함 뒤에 숨겼다. "연기를 자꾸 하시려구 해", "배우가 목 관리를 좀 해라"와 같은 현실성 높은 대사에 관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진다. 공연은 10일까지.

진달래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