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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씨의 ‘아무 말’

입력
2022.04.0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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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신간 ‘가불 선진국’ 문재인 정부 자평
‘한국 선진국 진입시켰다’ 견강부회
헛된 선전 접고 실패 넘어설 길 찾아야

조국 전 법무장관은 자신의 신간 '가불 선진국'에서 문재인 정부를 "대한민국을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킨 정부"라고 자평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조국 전 법무장관은 자신의 신간 '가불 선진국'에서 문재인 정부를 "대한민국을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킨 정부"라고 자평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제 조국 전 법무장관의 말을 두고 새삼 시비를 제기하는 건 부질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새삼 그를 다루는 건 그냥 듣고 넘기면 안 될 것 같은, 그의 온당해 보이지 않는 최근 진술 때문이다.

그가 문재인 정부를 “대한민국을 최초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킨 정부”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최근 펴낸 ‘가불 선진국’(메디치미디어 발행)이라는 책에서다. 책 소개에 따르면 조씨는 그 책에서 선진국 진입 평가의 근거로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발언권도 강해졌다’는 점,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최소화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사라졌다’는 점 등을 들었다.

현 정권 핵심인사로서 집권 5년의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독백이라면 그러려니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의 진술은 지성인다운 엄정함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는 데다, 그 진술 또한 책을 통해 제법 역사적 평가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기에, 그 말을 정색하고 따져볼 필요가 생긴 것이다.

우선 조씨는 문재인 정부가 ‘진입시켰다’고 했는데, ‘시키다’라는 사동사를 쓴 건 합당치 않다. ‘한강의 기적’이 박정희 정부가 아닌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면, 선진국 진입 역시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식의 표현은 타당치 않다. 더욱이 현 정부의 정치적 목표 또한 무슨 선진국 진입이니 하는 것보다는 정의와 평등 같은 가치에 두지 않았는가. 따라서 조씨의 표현은 한발 양보해줘도 ‘(임기 중)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정도여야 했다.

문제는 또 있다. 조씨가 말한 선진국이 뭔지 막연한 건 그렇다 쳐도,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발언권도 강해졌다’는 말은 물론, ‘남북 군사적 긴장이 최소화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사라졌다’는 얘기도 수긍하기 힘들다.

조씨는 1994년 외교 현장 상황을 잘 모르겠지만, 당시 공로명 외무장관이 4자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자 장쩌민 주석은 집무실 건물 밖 현관까지 나와 3분 가까이 반듯한 자세로 서서 공 장관의 도착을 기다렸다.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연신 머리를 쓸어 넘기던 장 주석의 선선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약간 익살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도 애써 대장노릇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인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자주 두 손을 모은 채 다소곳했고,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김 대통령을 형님 모시듯 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물론 당시 우리 국민소득은 3만 달러가 안 됐고, G7 정상회의에 초청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문 대통령 국빈방문 때 보인 중국 측의 무례와는 사뭇 달랐던 당시 김 대통령이나 공 장관을 대하던 주요국 정상들의 태도는, 적어도 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현 정부 들어 갑자기 높아진 듯 어물쩍 말하는 건 지나친 견강부회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북한이 ICBM을 포함해 연일 도발 중인 최근 현실만 봐도 ‘남북 긴장이 최소화됐다’는 얘긴 따질 필요조차 없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현 정권은 임기 중 나라의 위상이 크게 신장된 것을 성과로 은근히 내세운다. 문 대통령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라는 표현도 하나의 예다. 그런 메시지를 대할 때마다 지금이 미국 CIA 눈치 보던 군부독재 시기도 아니고, 더욱이 남미 같은 신식민지 상태도 아닌 마당에 대체 무슨 소린가, 하는 느낌이 맴돌았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록 정권을 내줬지만, 지금부턴 실패를 직시하고 실력을 키워 미래의 집권에 대비하는 게 정치적 책무라고 본다. 조씨도 개혁세력의 발전을 바란다면 ‘아무 말’ 같은 걸로 실질을 호도하며 자족하는 데 애먼 힘을 쏟을 게 아니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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