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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계의 장어' 전기차 폐배터리…뜯어보니, 버릴 게 없네

입력
2022.04.05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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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코발트·리튬·망간·흑연 재생산
재활용 과정 속 화재·환경오염 문제도
국내 기업들도 신기술 개발 박차
"관건은 상용화, 제도 뒷받침도 필수"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B홀에서 열린 xEV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관람객들이 전기차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B홀에서 열린 xEV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관람객들이 전기차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국내 최대 관광지역인 제주도는 '전기차의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고도화된 현지 충전 인프라 덕분에 연내 제주도의 전기차 보급 목표도 3만 대에 달한다. 그랬던 제주도가 연초부터 전기차에서 발생한 사용 후 배터리(폐배터리) 처리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폐배터리를 보관하던 전기차배터리산업화센터 내 저장공간(250대규모)이 최근 포화상태에 다다른 탓이다. 전기차 보급 때부터 우려됐던 폐배터리 처리 문제가 발등의 불로 돌아온 셈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는 가운데 그간 전기차 폐배터리 활용 문제는 친환경차 시대 전환 과정에서의 굵직한 과제로 꼽힌다. ‘전기차=친환경=좋은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벌써부터 배출되는 ‘전기차 쓰레기’ 처리 문제는 당장 해결이 필요한 문제다. 다른 쓰레기처럼 매립이나 소각이 어려운 데다 배터리 내 소재인 리튬은 물이나 공기에 닿으면 화재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 사용 후처리 기술 개발이 풀어야 할 최대 숙제로 주어진 이유다.

GM 쉐보레 전기차 '볼트 EV'에 적용된 LG에너지솔루션 고전압 배터리 이미지. GM 제공

GM 쉐보레 전기차 '볼트 EV'에 적용된 LG에너지솔루션 고전압 배터리 이미지. GM 제공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하거나

업계에선 아직 '골칫덩이' 신세인 폐배터리를 재사용이나 재활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해당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차에서 떼어내도 60% 이상의 성능이 남은 배터리의 경우엔 당장 충전주행거리가 짧은 농기계와 전기자전거에 재사용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활용 방안 등이 현실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문제는 재사용마저도 힘든 폐배터리 처리다. 내연기관차의 연료탱크와 기능이 비슷한 전기차 배터리의 부피는 연료탱크에 뒤지지 않는 데다 운반 및 보관에 상당한 비용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현재로선 폐차할 때 배터리를 구매 보조금을 준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하게 하는데, 쌓아만 둘 경우 공간 부족 문제가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한국환경연구원에 따르면 당장 내년에만 2,355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폐배터리는 2029년쯤엔 8만 개에 달할 전망이다. 최근 전기차 보급 추이를 감안할 때 2030년대에 들어선 폭증할 게 뻔한 상황이다.

뜯어보니 버릴 게 없는 폐배터리

희망적인 대목은 폐배터리의 시장성이 꽤 뛰어나단 점이다. 최근 독일 기업 뒤젠펠트가 배터리에 포함된 원료인 니켈, 코발트, 리튬, 망간, 흑연 등을 다시 모터용 배터리 재생산에 투입한 결과, 96%를 재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 폐배터리가 재활용을 위해 운반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기차 폐배터리가 재활용을 위해 운반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들이 희소자원으로 꼽히는 터라 국내 기업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경쟁력을 갖춘다면 사실상 국내에서 해당 자원들을 뽑아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단 얘기다. 핵심금속 가치를 모두 더하면 폐배터리 한 개에서 100만 원 이상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게 업계 정설이었는데, 배터리를 구성하는 이들 금속의 가치가 수년 사이 크게 높아지면서 최근 수익률은 더 높아졌다. 국내외 기업들이 폐배터리 ‘심폐소생’ 기술 개발 경쟁에 몰두하는 이유다.

전기차엔 수많은 배터리가 들어간다. 흔히 ‘전기차 배터리’로 여겨지는 ‘배터리팩’은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셀’과 이들을 묶은 조립체로 알려진 ‘모듈’ 등을 포함한다. 기술 개발 포인트는 폐배터리의 자원을 최대한 환경친화적으로, 안전하게 효율적으로 재창출하느냐에 있다. 생선 뼈에 붙은 살을 최소화하듯 폐배터리 내 자원을 얼마나 많이 ‘발라내느냐’도 재활용 기술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한국환경연구원

자료=한국환경연구원


환경 파괴하는 친환경 전기차? 모순을 극복하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진 ‘습식파분쇄’가 보편화된 재활용 기술로 알려져 있다. 배터리팩과 모듈, 셀을 모두 해체한 뒤 염수를 이용한 방전 과정을 거치고, 황산침출, 리튬분리, 용매 처리를 통해 금속을 추출해왔다. 이 과정에선 불이 나고 다량의 폐기물이 발생하는 등 안전성과 환경 문제가 꾸준히 대두됐다.

재작년 한국화재소방학회 논문지를 통해 발표된 ‘염수농도에 따른 휴대폰 배터리의 방전특성과 화재 위험성 분석(우진수·소수현)’을 살펴보면 그간 활용돼 온 ‘염수방전’의 화재 위험이 입증된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폐기하는 방법으로 사용돼 온 염수방전의 경우, 배터리 자체에 양극(+)과 음극(−)이 존재하고 염수에서는 전기를 띤 입자인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수용액 속에서 전류가 흐르게 되고 염수에 담긴 배터리는 전류가 흐르고 발열이 일어난다.

해체 이후 광물을 추출하는 과정에선 폐기물이 과다 배출되고, 용매 처리 단계에선 화학물질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상당량의 전기나 열 에너지를 필요로 한 점도 극복 과제였다.

국내기업의 폐배터리 건·습식 융합공정 과정

국내기업의 폐배터리 건·습식 융합공정 과정


세계시장 선점 나선 국내 기술, 관건은 ‘상용화’

국내 기업들도 이 같은 기술적 한계를 극복,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제련 기업 고려아연은 ‘건·습식 융합공정’ 기술을 설계해 목적금속 회수율을 높이고 폐기물 발생을 크게 줄이는 데 올인하고 있다. 비철금속 제련 시 고온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금속을 회수하는 건식제련기술을 폐배터리 사업에 적용한 것이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팩 해체 단계에서부터 로봇공정을 활용, 그간 화재 위험이 높고 폐수처리 문제가 발생했던 염수방전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됐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기존 공정에서 회수하기 어려웠던 구리를 추가적으로 회수함으로써 수익을 증대할 수 있다”며 “건식 전처리 공정을 통해 상당량의 불순물을 제거, 후처리 공정을 단순화함으로써 공정 효율을 높이고 폐기물 발생을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세계 최초로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먼저 추출해 재활용하는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리튬은 나머지 금속들과 화학적으로 강하게 결합돼 있는 탓에 불순물이 끼어드는데, 리튬을 먼저 추출하는 기술을 활용하면 다른 금속들의 회수가 쉬워질뿐더러 회수율도 높아진다는 게 SK이노베이션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관련 특허만 50개가 넘는다”고 전했다.

관건은 상용화다.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기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다른 나라 기업들의 기술력 또한 꾸준히 발전할 거란 점에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들 기업의 기술이 하루빨리 상용화될수록, 국내 폐배터리 적치 문제 해소 또한 빠르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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