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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성폭력 고발 잇따르는 일본… 왜 주요 언론은 외면할까

입력
2022.04.03 15:33
수정
2022.04.03 22: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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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감독 겸 배우 사사키 히데오.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일본 영화 감독 겸 배우 사사키 히데오. 공식 홈페이지 캡처


“나 같은 피해자가 또 나와선 안 된다. 남편에게도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밝히고 이 자리에 왔다.”

2013년 12월 영화 감독 사사키 히데오와 술을 마신 뒤 성폭행당한 A씨가 9년 전의 사건을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週刊文春)에 폭로했다. 배우가 되기 위해 상경한 A씨는 연기 지도 워크숍이 끝난 후 사사키 감독의 연락을 받고 함께 술을 마셨다가 으슥한 주차장에 끌려갔다. “소란 피우면 죽인다”는 위협을 받고 성폭행당한 A씨는 그날의 충격으로 배우의 길을 포기했다. 하지만 사사키 감독이 가정 내 성폭력을 다룬 영화 ‘밀회’를 3월 말 개봉한다는 말을 듣자 분노를 참기 힘들어 폭로를 결심했다.

분슌이 피해 여성 4명의 증언을 담은 기사를 내보낸 것은 지난달 9일. 이후 새로운 피해자의 증언이 잇따랐다. 영화 ‘밀회’의 개봉은 보류됐다. 사사키도 소속사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영화 관계자 등에 대해서일 뿐 피해자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일본 중견 탤런트 기노시타 호카. 본인 인스타그램 캡처

일본 중견 탤런트 기노시타 호카. 본인 인스타그램 캡처


배우 기노시타 호카도 연예계 지위 이용 성폭력

분슌은 이어 사사키 감독과 친한 배우 기노시타 호카(58)의 성폭력 관련 증언을 보도했다. 유명 조연 배우인 그는 주로 20대 여성 배우나 지망생에게 연기를 지도해 준다며 집으로 유인한 후 성폭행한 것으로 보도됐다. “키워주려 했는데 이 정도 근성밖에 안 되냐”며 협박하기도 했다.

기노시타는 지난달 28일 트위터를 통해 “10년 전 일이라 기억에 없는 일도 있지만 대체로 맞다”고 사실을 인정하고 무기한 활동 중지를 발표했다. 소속사도 계약을 종료했고, 지난 5일부터 방영 예정이던 NHK 드라마 ‘정직 부동산’은 기노시타의 출연 분량을 편집해 들어내기로 했다.


연예기획사 눈치 보는 일본 매스미디어

잇따른 연예계 성폭력 보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유명 감독들은 “지위를 이용한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영화계 성폭력 폭로가 잇따르며 '미투' 운동이 벌어졌던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주요 일간지나 방송은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분슌은 가토 아키히코 편집장 명의의 '연예계의 어둠은 왜 봉인될까'라는 칼럼을 통해 일본에선 ‘쟈니즈’ 등 유명 기획사의 지위가 너무 높아 TV 방송국이 성폭력 사건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출판계 역시 잡지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선 쟈니즈 소속 연예인의 인터뷰나 이들의 사진을 활용한 캘린더 판매가 중요해 눈치를 본다.

분슌은 1999년 10월부터 전 쟈니즈 소속 소년 탤런트에 대해 쟈니즈 창업자 쟈니 기타가와가 성적 학대를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명예훼손 재판에서도 성폭력 사실이 인정됐다. 그러나 미디어가 크게 다루지 않았을뿐더러,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에 흔들림이 없었다.

피해자를 더 비난하는 인터넷 여론도 용기를 내 고발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여성단체 ‘걸 파워’의 이케우치 히로미 대표는 닛칸겐다이에 “일반 기업에선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조직을 만드는 등 변화가 있지만 연예계는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자정 작용이 작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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