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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초점] 악녀는 왜 후드티를 입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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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초점] 악녀는 왜 후드티를 입지 않을까

입력
2022.04.0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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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이 '펜트하우스'에서 천서진 역을 연기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화려한 의상들을 소화했다. SBS 캡처

김소연이 '펜트하우스'에서 천서진 역을 연기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화려한 의상들을 소화했다. SBS 캡처


라틴 아메리카 여성으로서 볼 수 없었던, 조금 더 지성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어요. 성적 대상화되지 않았죠. 딱 붙는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배우 아드리아 아르호나가 '모비우스'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여성성을 부각시키지 않고 안티 히어로의 오른팔인 마르틴 그 자체를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대부분의 드라마, 영화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의상의 스펙트럼이 정해진다. 이에 역할의 유형이 비슷하다면 의상이 주는 느낌도 대부분 유사하다. 많은 악녀들은 화려하고 고혹적인 의상들을 선택해왔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와 재력을 갈구하는 여성들이 단정한 원피스, 수수한 후드티를 입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열린 '2021 SBS 연기대상'에서 김소연이 대상을 거머쥘 수 있게 해준 '펜트하우스'의 천서진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펜트하우스' 시리즈 속 천서진은 강렬한 붉은색 옷, 몸매를 부각시키는 럭셔리한 의상 등을 입었다. 어깨각이 강조된 옷으로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했다. 흑발과 레드 립의 조화가 고혹적인 분위기를 강조했고, 볼드한 액세서리는 그의 비주얼에 세련된 매력을 더했다.

박준금은 IHQ 드라마 채널, MBN 드라마 '스폰서'에서 빌런 이 회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화려한 액세서리들을 활용한 패션을 선보였다. 커다란 귀걸이와 머리핀, 럭셔리한 스타일의 진주 목걸이가 이 회장 캐릭터의 비주얼을 장식했다.

지난해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모범택시' 속 백성미는 지하금융계의 큰손이다. 차지연은 빌려준 돈은 어떻게든 회수하는 백성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백성미는 짙은 색 옷을 자주 입었다. 왼쪽 가슴에 커다란 꽃 장식이 달린 의상을 착용하기도, 벨트로 허리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의 옷에서는 세련된 분위기가 묻어났다.

차지연이 '모범택시'에서 허리선을 강조한 옷을 입었다. 그는 지하금융계의 큰손 차지연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SBS 캡처

차지연이 '모범택시'에서 허리선을 강조한 옷을 입었다. 그는 지하금융계의 큰손 차지연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SBS 캡처

이민호는 지난달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작품 속 자신의 옷이 단지 스타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옷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고 숨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민호의 말처럼 등장인물의 옷은 작품에서 표현의 수단 중 하나로 사용된다. 옷은 캐릭터의 성격, 욕망 등을 담아낸다.

악역들의 패션이 주로 화려한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스타일리스트 김지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펜트하우스' 천서진의 스타일링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천서진의 패션에 대해 "항상 주목받아야 하고 원하는 건 뭐든지 가져야 하는 캐릭터 성격에 맞춰 헤어, 메이크업, 패션 모두 화려하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막대한 부와 권력을 꿈꾸는 악녀들은 럭셔리한 패션을 선택해왔다.

물론 실제 악녀들이 모두 화려한 옷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이에 드라마, 영화 속 인물들의 옷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극 중 의상들은 인물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이해도와 몰입도를 높여왔다. 천서진과 이 회장, 그리고 백성미가 수수한 옷을 입었다면 보는 이들에게 지금만큼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드리아 아르호나의 사례처럼 의상과 관련해 성적 대상화와 같은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캐릭터의 성격에 따라 결정되는 의상의 좁은 스펙트럼을 아쉬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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