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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청년의 간병살인 비극… 법원은 '존속살해' 판단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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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청년의 간병살인 비극… 법원은 '존속살해' 판단 고수했다

입력
2022.03.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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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도 "살인 고의 없었다" 주장 안 받아들여
뇌출혈 부친 방치 혐의 20대, 징역 4년 확정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대법원 청사. 연합뉴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혼자 아버지를 간병하다가 방치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은 지난해 항소심을 앞두고 복지 사각지대에서 빚어진 '간병 살인' 비극으로 알려져 탄원 여론이 일기도 했지만, 법원은 살인의 고의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1일 대학생 A(23)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뇌출혈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아버지 B(56)씨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데도 방치해 사망하게 한 혐의(존속살해)로 기소됐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A씨는 아버지가 심부뇌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증세를 앓자 2020년 9월부터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했다. 처음엔 삼촌의 도움을 받아 입원비를 냈지만 2,000만 원으로 불어난 병원비를 마련하기 어렵게 되자 지난해 4월 23일 아버지를 퇴원시키고 집에서 혼자 돌봤다.

B씨는 약과 치료식을 챙겨주고 2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주는 등 24시간 간병을 필요로 했다. 대소변도 가릴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A씨는 월세·가스비·전기료 등이 연체되고 빚 독촉에 시달리는 상황에 자포자기해 간병을 포기했다. 퇴원 후 일주일 동안은 환자에게 하루 3개씩 제공해야 하는 영양식을 총 10개만 주입했고, 5월 1일부터는 물도 주지 않았다. B씨가 이따금 "아들아" 하고 자신을 불러도 모른 척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결국 퇴원한 지 보름이 지난 5월 8일 영양실조로 숨졌다.

A씨는 경찰 수사에서 살인의 고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에선 아버지를 방치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아버지가 퇴원한 다음 날 '이렇게 살기는 어렵겠다. 돌아가시게 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측은 법정에서 존속살해가 아니라 유기치사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가 살인의 고의를 갖고 아버지를 방치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1심 법원은 "동기와 경위가 어찌됐든 혼자 거동할 수 없는 피해자를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며 변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지난해 8월 선고공판에서 A씨에게 형법상 존속살해죄 기준형량(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형)보다 낮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형을 절반가량으로 줄이는 재량권을 발휘한 것이다.

항소심을 앞두고 A씨 사건은 언론 보도로 알려져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 사건에 대해 "방임과 무관심 속에 이루어진 타살"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간병 문제 대책 마련을 공언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도 "가슴이 무너진다"며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지난해 11월 A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생계 및 장애 관련 지원을 받으라는 주변의 조언을 이행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처방약을 한 차례도 투약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방치한 점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원도 살인의 고의를 인정한 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유감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최정규 원곡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인 A씨에게 수사기관과 법원이 '살인의 고의'라는 법의 잣대를 유독 엄격하게 들이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존속살해죄의 위헌성을 따져봐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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