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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KBO 총재 "불혹의 한국야구 마스터플랜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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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 KBO 총재 "불혹의 한국야구 마스터플랜 있어야"

입력
2022.04.02 06: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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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력 저하 터닝포인트 필요"
"산업도 제자리걸음 구단 이기주의 사라져야"
40년 해설 쉼표 "뒤처지지 않으려 치열하게 살았다"

허구연 KBO 총재가 3월 3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본보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허구연 KBO 총재가 3월 3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본보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허구연(71)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임 총재의 추대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14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일구회,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까지 야구계는 모처럼 한목소리로 반겼다. 낙하산이거나 야구 문외한 인사의 흑역사로 점철된 자리에 사상 첫 야구인이 앉는 경사니 그럴 수밖에.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만난 그는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40번째 시즌을 맞는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재도약의 비전을 제시했다.

허 총재는 뼛속까지 야구인이다. 경남고-고려대-한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MBC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해왔다. 1985년 프로야구 최연소(34) 감독으로 깜짝 발탁된 후 6년간 현장 외도 기간을 제외하곤 평생 마이크를 잡았고, 올 시즌도 변함없이 개막전 중계를 준비 중이었다. 허 총재는 "1990년 토론토 마이너리그 코치를 할 때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돈, 명예, 권력 중에 나는 명예를 추구하자. 해설을 통해 야구 발전에 이바지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 40세 때의 굳은 결심은 실제 5번의 감독 제의와 정치권의 러브콜을 뿌리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덧 칠순을 넘긴 야구계의 어른으로 위기의 한국 야구마저 외면할 수 없었다. 허 총재는 "이사회에서 나를 추천했다는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 야구계가 원한다면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고 돌아봤다.

각오는 했지만 취임도 전에 강정호 문제가 터졌다. 취임식에서 그는 "9회말 1사 만루에서 등판한 구원투수"라고 스스로를 옥죄었다. 코로나19 시국 이전부터 관중은 감소세였고, 잦은 사건 사고와 도쿄올림픽 참패로 한국 야구는 침체에 빠졌다. 허 총재는 "경기력 쪽으로 보자면 선수들이 발전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면서 1984년 삼성 얘기를 꺼냈다. 그는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에 진 삼성 그룹에서 난리가 났다. 여러 경로로 나에게 도움을 구하기에 피터 오말리(전 LA 다저스 구단주) 추천을 받아 베로비치를 소개했다"고 떠올렸다. 국내 최초의 미국 전지훈련이었다. 훈련만 반복하는 일본식 야구가 절대 기류였던 당시 미국의 선진야구를 접한 삼성 선수들은 그해(1985년)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허 총재는 "요즘 메이저리그 구단을 가 보면 트레이너라든지 일본인이 없는 구단이 거의 없다. 일본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배우려 하는데 우리는 베이징올림픽 우승 이후로 팬들이 열광하니 야구를 잘하는 줄 착각하고 있다"고 일침을 놨다.

스포츠산업 측면도 그의 눈에 갈 길이 멀다. 허 총재는 "마스터플랜이 없다. 중계권도 그렇고 통합마케팅도 그렇고 언제부턴가 KBO리그가 소탐대실하고 있다. 포털사이트만 들어가면 10개 구단 티케팅도 하고 영상도 보고 다 해야 되는데 젊은 세대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프로 초창기 어린이회원에 가입하면 가입비보다 많은 선물을 줬다. 지금 야구에 열광하는 중장년 대부분 그런 추억을 갖고 있지 않나"라며 "구단이 자꾸 수익만 따지니까 한국 야구가 진일보하지 못하는 거다. 구단 사장들이 2, 3년 단위로 바뀌니 전문성이 부족하다. 그들은 돈 적게 쓰고 우승하는 게 최대 성과 아닌가"라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허 총재의 대표 별명은 '허프라'(허구연+인프라)다. 인프라 개선이 안 되면 한화가 대전을 떠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엄포인 듯싶기도 하지만 허 총재는 "구단은 절대 (지자체와 협상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부나 지자체를 만나는 순간 상대 진영에서 정경유착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선택한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40년 해설을 하며 쌓은 그의 인맥은 정ㆍ관계에 두루 퍼져 있다. 첫 업무를 시작한 총재 집무실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축하 난이 도착했고, 김부겸 총리의 것도 보였다. 허 총재는 "내가 직접 발로 뛰어다닐 생각"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허구연 KBO 총재(가운데)가 3월 2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민경삼(맨 왼쪽) SSG 대표, 전풍 두산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허구연 KBO 총재(가운데)가 3월 2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민경삼(맨 왼쪽) SSG 대표, 전풍 두산 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야구팬들은 아쉽게도 '돼쓰요'(됐어요), '베나구'(변화구) 등 그의 구수한 유행어를 당분간 들을 수 없게 됐다. 마이크를 놓는 건 1991년 이후 31년 만이다. 대체불가 레전드 해설위원으로 평가받지만 그는 젊은 후배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의 연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허 총재는 "중계 한 번 하기 위해 자료를 100개 뽑아 놓고도 5, 6개밖에 쓰지 못한다. 오전 9시에 사무실에 나가서 메이저리그부터 국내 프로야구 5경기에 일본프로야구까지 가끔 보면 24시간이 모자란다"며 "후배들에게도 하는 얘기지만 지금 해설은 경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엄청난 준비 없이는 한두 달이면 밑천이 드러난다"고 조언했다.

그의 임기는 도중 하차한 정지택 전 총재의 잔여 임기인 내년까지다. 연임 의지를 묻자 허 총재는 "난 한국의 빈스 컬리(67년간 다저스 해설)가 되겠다"라고 웃었지만 한국 야구를 살리겠다는 각오로 기꺼이 수장 자리를 받아들인 건 분명하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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