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명, 10명, 14명. 한·미·일 프로야구 역대 커미셔너(총재)의 숫자다. 프로야구 역사와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미국은 1920년 케네소 랜디스 판사부터 현재의 롭 맨프레도까지 102년에 걸쳐 단 10명(평균 10.2년)만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직을 수행했다. 일본도 1951년 검찰총장 출신 후쿠이 모리타를 시작으로 지금의 미야우치 요시히코 커미셔너까지 72년 동안 14명(평균 5.1년)이 거쳐갔다.
반면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서종철 초대 총재부터 이번에 취임한 허구연 총재까지 40년에 벌써 16명(평균 2.5년)째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에 따르면 총재는 프로야구를 통할하며, 총재가 행하는 지시·재정·제재는 최종의 것이며, 구단과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총재의 실상은 KBO 이사회에 참석해 구단 간의 의견을 조율한 뒤, 표결이 이루어 질 경우에는 단지 한 표를 행사하는 데 그칠 뿐이다. 취임해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하다가도 이내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 결국 총재 '단명사'의 이유는 아닐까.
총재는 구단주들이 모인 총회에서 선출하게 돼 있었다. 비록 낙하산 인사도 많았지만 초창기 총재 선출 회의에 이건희(삼성) 박용곤(OB) 김현철(삼미) 박건배(해태) 이웅희(MBC) 신격호(롯데) 6개 구단주 모두가 참석해 함께 식사하며 프로야구를 화제로 담소를 나누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1999년부터 이사회에서 총재를 추대한 뒤 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최근에는 총회조차 열지 못하고 서면 결의로 대신한다. 구단주들의 총회는 2015년을 끝으로 열지 못했다. 그마저도 대부분 구단주들이 전면에서 자취를 감추고 구단주대행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엔 사장이 구단주대행을 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어서 이사회나 구단주회의나 참석 멤버는 거의 같다.
1993년의 일이다. 입장수입 분배비율을 정하는 문제가 생겼다. 홈팀의 관객 유치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홈팀의 비율을 높이자는 대도시 중심의 구단과 지역 사회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원정팀의 비율도 고려해야 된다는 의견이 이사회에서 팽팽히 맞섰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총회로 상정돼 현재의 홈팀 72%, 원정 28%로 정해진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이상훈 총재가 "나에게 맡겨달라"고 했고, 구단주들 모두 흔쾌히 일임한 결과였다. 이사회에서는 구단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조정이 되지 않는 사항도 총회에선 양보의 미덕으로 큰 틀의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다.
1997년까지는 총재와 구단주, 사장, 사무총장이 함께하는 골프 대회도 매달 열렸다. 골프를 구실로 구단주들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모여 프로야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40주년을 맞은 프로야구가 구단에는 수익 산업으로 성장하고, 팬들에게는 즐거운 여가선용의 장으로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구단주들이 다시 모여 떨어진 KBO 총재의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상일 전 KBO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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