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트라우마 클리너'
특수 청소 사업가 샌드라 팽커스트의 특별한 삶
젊은 여성이 헤로인 과용으로 숨진 후 2주 반 동안 발견되지 않고 방치됐던 현장에 특수 청소 업체가 출동한다. 직원들은 방호복과 일회용 마스크, 파란 수술용 장갑에 신발 싸개까지 착용한, 흡사 스머프와 우주인의 중간쯤 돼 보이는 차림이다. 금발의 60대 여성 한 명만 보라색 파카에 청바지, 하얀 운동화 차림에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너무 오래 해서 이제는 마스크 같은 건 쓸 필요가 없다"는 그는 "그냥 이 악물고 웃으며 참는 거지"라며 콧노래하듯 말한다.
호주의 'STC 특수 청소 서비스 전문 회사' 창업자인 샌드라 팽커스트에게 범죄, 홍수, 화재 등 다양한 트라우마 현장을 청소하는 일은 평범한 일상이다. 사체 부패로 생긴 사체흔이나 저장 강박으로 쌓인 쓰레기 악취에도 무덤덤하다. 살인, 자살, 약물 중독 등의 재앙이 휩쓸고 간 자리를 치우는 일은 존엄한 한 인간의 삶의 질서를 되찾아 주는 과정일 뿐이다.
'트라우마 클리너'는 팽커스트의 삶을 다룬 에세이다. 호주 작가 세라 크래스너스타인은 4년간 팽커스트를 따라 20여 곳의 현장을 방문하고 팽커스트의 삶을 취재했다. 팽커스트가 음울한 '트라우마 클리너'라는 직업을 의연하고 진정성 있게 대하게 된 데에는 극한의 고통을 이겨낸 그의 인생 여정이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책은 팽커스트의 노동 현장과 특수 청소를 의뢰한 고객의 사연을 들려주는 한 축과 수많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 온 팽커스트의 인생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감사의 말'에서 팽커스트가 자신과 처음 마주한 날 "내 인생은 한 권의 책"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팽커스트는 모두 한 사람의 경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다단한 삶을 살았다. 유년 시절 입양됐지만 양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고,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남성으로서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지만 성전환 수술 후 남성과 재혼했다. 드래그 퀸 쇼에 출연했고, 성 노동자로도 살았다.
따라서 특수 청소 현장에서는, 냉대와 차별 속에 일생을 보내며 평범한 세상에 속하고 싶었고, 정서적 유대감이 절실했던 팽커스트의 욕구가 의뢰 고객들에게로 투영된다.
가령 죽은 쥐 서른 마리를 반려동물이라며 치우지 않고 지내는 동물 조련사의 집 방문을 앞두고, 저자는 죽은 쥐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진저리친다. 하지만 팽커스트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 죽은 쥐를 내다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고객을 안심시키는 데 힘을 쏟는다. 또 수년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지내 온 여성에게는 "인생에서 좋은 면을 봐도 될 때가 됐다"며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위로한다.
팽커스트의 명함에 적힌 '뛰어남은 우연히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다'라는 문구처럼, 팽커스트의 뛰어난 공감력과 배려는 우연히 얻어진 게 아니었다. 그는 트라우마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온 것이다.
저자는 팽커스트의 인테리어 소품인 표범 머리 모양의 청동상을 언급하며 "트라우마의 반대는 트라우마의 부재가 아닌 질서와 균형"이라고 강조한다. 표범 청동상은 화재로 표면이 벗겨져 버렸지만 팽커스트에게 청동상이 불에 탄 것은 언젠가 한 번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팽커스트에게는 표범 머리상을 처음 샀을 때처럼 그 물건이 좋아 보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그대로 진열해 뒀다.
특수 청소가 필요한 팽커스트의 의뢰인들과, 극한의 삶을 살아 온 팽커스트에게도 비탄의 순간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일 뿐이다. 책은 나쁜 기억으로 점철된 삶도 결국은 살아내야 한다는 위로를 건넨다. 팽커스트는 지난해 7월 멜버른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동기부여 강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특수 청소부로 활동하는 김완씨가 2020년에 펴낸 '죽은 자의 집 청소'(김영사)와 함께 읽으면 아직은 낯선 특수 청소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다만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죽음을 성찰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 '트라우마 클리너'는 삶의 회복력과 인간적 유대 관계에 좀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담담한 문체로, 소설처럼 몰입도 높게 쓰였다. 호주에서 2017년 출간 후 '빅토리아 문학상' 등 유수의 출판 관련 상을 휩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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