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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의 본질은 삶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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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의 본질은 삶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

입력
2022.03.31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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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은 래퍼 이센스의 곡을 프로듀스하고 보아, NCT127 등의 곡을 작곡하며 프로듀서 겸 작곡가, DJ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 EDM과 뽕짝을 결합한 앨범 '뽕'을 내놓은 250은 "약간 슬프면서도 왠지 모르게 흥이 나서 좋다는 반응을 들을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250은 래퍼 이센스의 곡을 프로듀스하고 보아, NCT127 등의 곡을 작곡하며 프로듀서 겸 작곡가, DJ로 이름을 알렸다. 최근 EDM과 뽕짝을 결합한 앨범 '뽕'을 내놓은 250은 "약간 슬프면서도 왠지 모르게 흥이 나서 좋다는 반응을 들을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배우한 기자

"'뽕'이란 뭘까. 앨범을 제작하며 제가 찾은 뽕은 결국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갔다는, 삶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느껴지는 어떤 감정이랄까요. 오래된 예전 사진을 볼 때 느껴지는 애잔하고 허전한 기분 같은 것이죠."

힙합과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음악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프로듀서 겸 작곡가, DJ인 250(본명 이호형·40)이 무려 7년간 제작해 완성한 앨범의 제목은 '뽕'이다. 트로트의 하위 장르 뽕짝의 본질인 '뽕'을 EDM의 언어로 풀어낸 문제작이다. 같은 분야의 선구자인 이박사가 뽕짝의 관점에서 EDM을 끌어안았던 것과는 반대의 접근법이다. 지난 18일 음원 발표 후 이 앨범은 인디 음악 애호가들과 평론가, 음악인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올 상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29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250은 “어르신들 가운데선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외국 음악 같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며서 "이런 상반된 반응을 함께 들으니 더 좋았다"고 말했다.

7년 전 소속사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한 ‘뽕’은 힙합과 EDM, 트로트를 함께 들으며 자란 음악가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을 다룬 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릴 때 산울림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고속도로를 운전하실 때면 이박사의 음악을 트셨는데 그렇게 뽕짝이 각인된 것 같다"며 "뽕짝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서일 것이고 내가 듣기에 좋은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뽕'에는 2018년 먼저 선보인 첫 싱글 ‘이창’을 비롯해 지난해 12월 발표한 ‘뱅버스’, 재즈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이 참여한 ‘로얄 블루’,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주제가를 부른 오승원씨를 2년여 수소문해 완성한 ‘휘날레’ 등 11곡이 수록됐다. 전혀 다른 장르처럼 보이는 EDM과 뽕짝을 뒤섞은 뒤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게 장인의 솜씨로 빚어낸 앨범이다.

“처음엔 뽕짝처럼 들리는 사운드 소스를 들고 당대에 가장 세련되고 깨끗한 EDM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들어보니 유행에 따라 얄팍하게 만든 음악이더군요. 그래서 그때 만든 곡들은 모두 버렸어요. 그러다 4년 전 ‘이창’을 만들었는데 그게 이 앨범의 기준점이 됐죠. 멜로디를 중심으로 앨범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프로듀서 겸 작곡가 250의 앨범 '뽕' 커버.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프로듀서 겸 작곡가 250의 앨범 '뽕' 커버.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공


250은 소속사의 제안으로 전국을 다니며 ‘뽕’을 찾았다. 뽕짝에 쓰이는 악기를 찾아 다녔고 오일장과 지역 축제를 찾아가고 사교 댄스를 배우기도 했다. 이박사의 곡을 작곡한 김수일 선생을 만나기도 했다. 이 내용은 3년여 전 공개된 유튜브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에 담겼고 이번 앨범으로 이어졌다.

‘뽕’에 담긴 11곡에선 흔히 저급한 음악으로 불리는 뽕짝을 희화화하거나 대상화하려 하지 않고 하나의 고유한 장르로 존중하며 내재화하려는 태도가 읽힌다. 뽕짝의 예술적 가능성을 제시한 앨범이랄까. 세련된 음악으로 포장하려 잔재주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음악의 본질에 충실하려는 태도도 엿보인다.

“처음 음악 할 땐 자꾸 뭔가를 채워 넣어서 과시하려 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과하거나 넘치면 일회성 음악처럼 들리더라고요. ‘뽕’은 뭔가를 더 섭취하려 하기보단 그동안 들었던 음악을 비워버리고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야 만들 수 있는 앨범이었어요. 단맛과 짠맛의 조화, 기쁨과 슬픔의 배합처럼 균형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죠. ‘뽕’을 ‘슬픔을 엔터테인먼트의 소재로 삼은 앨범’이라고 할 때 그 슬픔이 은은한 슬픔이길 바랐어요. 제가 들은 우리나라에서 녹음된 모든 곡 중 가장 완벽한 노래로 꼽는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을 들을 때의 감상처럼 들렸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뽕'은 2014년 12월 발표 후 스스로 폐기해버린 데뷔 앨범 ‘원 나이트 스탠드’에 이어 7년여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앨범이지만 사실상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차기작은 어떤 모습이 될까. 그는 “’뽕’과 비슷한 앨범도, 지나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는 앨범도 아닐 것”이라면서 “제가 작곡을 하고 멜로디가 좋은 앨범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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