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드라마들이 인물과 이야기 중심으로 흘러갔다면 이제는 좀 더 희귀하고 대중에게 낯선 소재들이 드라마의 중심 축을 이루는 추세다. 제작진은 실제 전문가들에게 면밀한 조언을 받고 탄탄한 고증을 기반으로 한 웰메이드 스토리를 탄생시키고 있다.
최근 방송 중인 JTBC '기상청 사람들'은 열대야보다 뜨겁고 국지성 호우보다 종잡을 수 없는 기상청 사람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직장 로맨스 드라마다. 작품은 일상의 필수 정보인 날씨를 예보하지만, 정작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던 기상청을 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대본을 집필한 선영 작가가 기상청을 배경으로 내세운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모든 이들의 인생과 닮았다는 점이다. 기상청을 주제로 삼은 선영 작가는 고증을 위해 현직 기상청 부대변인 예보관 통보관 등에게 6개월간 자문을 받았다. 또 두 달간 예보관들과 함께 야간근무까지 겪으면서 디테일을 잡았다. 기상청 직원들도 최초로 기상청을 다룬 만큼 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위성, 레이더 영상 등 2~30년 치 자료를 일일이 찾아주면서 이야기에 보탬이 됐다.
작가의 열정이 전달된 덕분일까. 배우진도 대본 이상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주역을 맡은 송강은 "기상청 용어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많이 참고했다"라며 노고를 드러냈다.
애플티비 플러스의 화제작 '파친코'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연대기를 그리는 작품이다. 각본 및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수 휴는 각 분야의 자문을 받아 한국 문화의 디테일을 세세하게 반영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던 일제강점기를 현실적으로 다뤘기 때문에 역사 고증에 더욱 충실해야 했다.
이를 위해 역사학자 심용환은 직접 자문에 참여, 대본을 같이 보면서 작업을 완료했다. 작업 과정을 두고 심용환은 "1920년대에 아이에게 사탕을 주는 장면이 있는데, 제작진이 '그때 사탕을 먹었냐'고 물어보더라"라고 떠올렸다. 심용환 외에도 수십 명에 달하는 역사학자, 관동대지진 전문가 등이 대본 작업에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도 고증에 힘을 줬다. 작품은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 천재 수학자가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만나며 벌어지는 감동 드라마다. 박동훈 감독은 언론 배급 시사회를 통해 "수학의 고증에 오류 방지를 위해 자문을 받았고, 촬영 현장에도 수학 전문가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면서 수학에 대해 관객들이 더욱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작품은 이미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수학적 완성도와 전문성을 강조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집필한 이용재 작가는 경제학과를 졸업한 언론사 경제부 기자, 증권사 펀드 매니저 출신으로 눈길을 끈다. 이 작가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만 가설, 피타고라스 정리 등 수학 전문 지식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며, 물리학 교수에게 시나리오 사전 자문을 받아 신뢰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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