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차세대 과학자들을 위한 초청 강연회
"거대연구 많아지면서 다양성 중요해져
과학 학문뿐 아니라 문화도 함께 발전해야"
"큰 규모의 연구와 실험을 할수록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700명씩 모여 있으면 과학 기술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강점이 한데 합쳐져야 과학이 더 나아간다는 것을, 제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꼈습니다."
다가올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물리학회장 자리에 오르는 김영기(60)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젊은 과학인들을 위해 강조한 키워드는 '다양성'과 '경험'으로 압축됐다. 26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주최한 초청 강연회에 연사로 나선 김 교수는 입자물리학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미국 페르미연구소 부소장을 지내고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까지 두루 경험한 세계적 과학 리더 중 한 명이다.
경북 경산 출신으로 고려대 물리학과에서 석사까지 마친 김 교수는 "물리학이 좋아서" 1980년대 유학길에 올랐다. 물리학 중에서도 입자물리학 실험을 전공으로 삼은 김 교수는 로체스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UC버클리대를 거쳐 200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물리학의 본산'으로 알려진 시카고대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6년부터는 학과장 직도 맡고 있다.
점점 큰 단위의 실험단체를 경험하면서 김 교수는 다양성의 중요성을 배웠다.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에서 실험할 당시만 해도 4개국 60여 명의 입자물리학자들이 전부였지만, 미국 페르미연구소 검출기(CDF) 실험의 경우 무려 20개국 700여 명의 입자물리학자들이 함께했다. 김 교수가 페르미연구소 부소장으로 지낼 때 전체 인원은 2,000여 명에 달했으며, CERN에서는 3,000여 명의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야 했다.
김 교수는 2004년 CDF 실험 공동대표로 선출됐을 당시를 떠올리며 "갈수록 거대연구가 많아지며 다른 배경과 문화, 인종, 성별을 가진 과학자 간 협업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여성'이라는 소수자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 물리학회 회장 자리에 앉는 것도 김 교수에겐 큰 의미다. 이날 토론회 진행을 맡은 김원준 카이스트 교수는 "유리천장을 깨는 데는 남들보다 세네 배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며 "김 교수의 존재만으로도 한국 청년 과학자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넓게 경험해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좁은 환경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세상에 내던져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이 더 좋은 곳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편안한 활동 반경이 아닌 다른 세계를 겪어봐야 강해진다"면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 다른 연구를 하는 사람들과도 얘기해보고, 어려움에 부딪히고 헤쳐 나가는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과학계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조언이 나왔다. '개개인의 학문적 역량은 뛰어난 데 반해 한국이라는 집단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앞서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청중의 평가에 김 교수는 "우리의 학문은 비교적 늦게 시작됐지만, 과학·기술 모든 면에서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이 강점"며 "다만 문화적인 측면까지 우리가 선진국을 따라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개인의 역량을 넘어 과학 기술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문화와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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