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MBC '톡톡 동해인' TBN '경북매거진' 진행
5년 방송 활동 후 7년 경력단절 극복하고 방송 컴백
최근 '대화의 품격' 단행본 펴내고 작가 활동 시작
오전 5시, 알람 시간에 맞춰 휴대폰이 쇳소리를 내며 쨍쨍 울어댔다.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며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새벽잠을 씻어냈다. 화장대 앞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며 잰 동작으로 풀 메이크업을 했다. 아침 방송 시간에 맞추려면 미적거릴 여유가 없었다. 정장 차림에, 계절에 맞는 향수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방송 시작,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멘트를 날렸다. 화면 속 아나운서가 아니라 본인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간혹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내가 미친 게 아닐까?'"
포항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지현 아나운서의 재취업 분투기다. 현재 '포항의 유퀴즈'로 통하는 포항MBC '톡톡 동해인'에서 MC를 맡고 있고, TBN 경북교통방송의 '경북매거진'에서는 시사,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방면의 인터뷰를 능수능란하게 이끌어 관계자들 사이에서 '래리 킹'으로 불릴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방송인이지만 한때는 불러주는 곳 없는 '경단녀'였다. 무려 3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서 진행 연습을 했다.
"일주일에 한번, 목소리만 5분 방송 나가는데 그래도 해볼래?"
처음 방송가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어렵지만 쉬웠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포항MBC에 입사했다. 응시원서를 낼 때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방송국 공고가 뜰 때마다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고, 그 즈음에는 대기업의 입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을 해놓은 상황이었던 것. 면접관이 "떨어지면 뭐 할 거냐"는 질문에 "오라는 대기업이 있다. 거기로 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후 5년 동안 무서운 신예로 활약했다. 당당한 태도가 만든 아우라 덕분인지 짧은 경력에도 메인 방송의 안방마님 자리를 꿰찼다.
결혼을 하면서 잠시 쉬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7년이란 간극이 있지만, 그래도 방송 경력이 자그마치 5년인데' 하는 자신감으로 도전했다. 낙방을 확인하고 풀 스윙으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신문을 꼼꼼하게 훑고 일주일에 베스트셀러 5권씩 소화했다. 인터넷을 뒤져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파일을 검색해 일일이 받아적었다. 그렇게 만든 원고로 방송을 연습했다. 곧 끝날 줄 알았던 재취업 전쟁은 해를 세 번이나 넘겼다.
문은 한꺼번에 열리지 않았다. 3년 만에 손가락 하나 겨우 집어넣을 만큼의 틈이 벌어졌다. 포항MBC에서 내레이션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번이었다. 프로그램 시작할 때 고작 몇 분 목소리가 흘러나가는 게 전부였지만, 프로그램 전체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준비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내레이션에서 제대로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덕에 대본을 훑다가 오류를 잡아낸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1년을 목소리 출연으로 버텼다.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지현씨 목소리가 저렇게 좋았나?"하는 말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가랑비 같은 방송이었지만 끈질기게 버틴 덕이 김지현이라는 존재가 방송가를 서서히 적신 것이었다.
막막함을 견디고 있는 취준생들에게...
"지현씨, 프로그램 하나 해볼까?"
2017년 즈음, 내레이션을 맡은 지 1년 만에 진행 러브콜이 들어왔다. 방송가에 처음 발을 들일 때 최종면접을 봤던 피디였다. 국장으로 재직하다가 은퇴를 1년 남긴 즈음, 현장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고 김씨에게 함께하자는 제의를 한 것이었다. 메인은 아니었다. 중간 코너에 들어가 10분 남짓 방송을 진행했다. 그러다 이듬해에 메인 MC를 꿰찼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톡톡 동해인'이다. 김씨가 재취업을 준비할 때 가장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었다. 한번 중심으로 치고 들어가자 경사가 이어졌다. 두 달 뒤에 교통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를 지역 라디오계의 래리 킹으로 부상시킨 프로그램을 맡았다. 김씨는 "처음에는 작은 틈이었지만, 아등바등하니까 결국은 그 틈이 문처럼 넓어지더라"면서 "처음부터 문이 열리길 기대했다면 어쩌면 지금쯤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행사에서 포항지역 MC를 맡았다. 잘할 수 있을까, 조금 망설였다. 하던 대로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그랬더니 서울 행사 MC도 맡겼다. 전국구 MC로 발돋움한 셈이었다.
"3년 동안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단 한번이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정말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간절함이 작은 기회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김씨는 30년 같던 3년의 터널을 지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아무도 미래를 말해주지도 혹은 알려줄 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차라리 하늘에서 '너는 안 되니까 그만둬라' 하는 절대자의 음성이 들려왔다면 그냥 마음 편하게 포기했을 것"이라면서 "괜히 인생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과 지금 그만뒀다가 어느 지점인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해피엔딩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으르렁대며 혈투를 벌였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직업을 구하는 경단녀들이 있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회초년생들이 있습니다.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당신에게 답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누구에게도 답은 없었다. 작든 크든 자기 꿈을 이룬 사람들 모두 그 막막한 절망과 싸웠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경청'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해 방송가에 입문했지만, 지금은 방송이 김씨를 성장시키고 있다. '톡톡 동해인'을 통해 배우는 것이 너무 많다고 밝혔다. 김씨는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을 간파할 수 있겠더라"면서 "시청자들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가 발견한 공통점은 경청의 자세다.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는 "화자의 말과 뉘앙스, 맥락을 파악해가며 듣는 분들이 있다"면서 "몸 안의 모든 안테나를 질문자인 저에게 집중시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경청을 잘하는 분들은 제가 질문을 제대로 못 던질 때도 '귀신같이' 속뜻을 알아듣고 원했던 대답을 해주세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 저에게서 쑥 흘러나올 때도 있구요. 상대도 그 질문에 대답해놓고는 '이런 말은 처음 해본다'고 감탄해요. 경청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거죠. 경청의 습관은 나이와도 상관없어요. 최근 20대 벤처기업인을 만났는데 그도 경청의 고수였어요."
김씨는 "감히 말하건대 인터뷰를 해보고 나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인지, 혹은 지금의 지위와 상관없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대략 가늠이 된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고 방송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매일 매일 들어요. 방송을 통해 세상과 인생을 배웁니다. 이렇게 좋은 직업이 또 있을까 싶네요. 김지현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이 좋은 정보와 감동이 시청자와 청취자들에게도 알뜰하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도 빼놓지 않았다.
"허허, 하는 웃음으로 철옹성 같은 고집도 무장해제시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박정우 교통방송 피디님, 창의적인 대본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시는 배은정 작가님을 비롯해 항상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주시는 MBC 신재민 감독님, 함께 작업하는 이들의 잠재력을 무한대로 끌어내시는 최동렬 국장님, 따뜻한 카리스마의 신영민 제작부장님까지 등 이런 크고 작은 노고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분들이 가져온 온갖 나물과 고기, 고명에 김지현이라는 매콤달콤한 고추장이 한 숟갈 탁, 들어가서 드디어 '맛있는 방송'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김씨는 최근 '대화의 품격'이라는 단행본을 내 작가로서의 활동도 시작했다.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소통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제가 방송을 통해 배운 품격있는 소통법을 대중에 널리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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