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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만 빌려줬는데..." 무면허 모녀, 중고 외제차 샀다가 빚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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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만 빌려줬는데..." 무면허 모녀, 중고 외제차 샀다가 빚더미

입력
2022.03.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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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도 높여 주겠다" "수익금 주겠다" 접근
명의 빌려 중고차 구입 후 대출금 상환 안 해
문제 제기하면 뒤늦은 차량 인도로 무마 시도

18일 오후 서울 장안평중고차매매시장에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뉴시스

18일 오후 서울 장안평중고차매매시장에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뉴시스

경기 평택시에 사는 조모(45)씨 모녀는 올해 초 캐피탈 회사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했다. 조씨 어머니가 4,700만 원 상당의 중고 벤츠 차량을 사겠다며 대출을 받아놓고는 갚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조씨 모녀는 중고 벤츠를 타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다고 했다. 두 사람은 운전면허증도 없다.

이들이 말한 사정은 이렇다. 조씨는 지난해 6월 남동생의 어릴 적 친구인 중고차 딜러 송모씨를 만났다. 목사인 동생이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도와주겠다며 접근한 송씨는 조씨 모녀에게 중고차 구매에 명의를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캐피탈 회사에서 차값을 대출받고 할부로 갚으면 동생 신용도가 올라갈 것이며, 차량은 자신이 쓰고 대출도 갚겠다고 했다.

모녀는 미심쩍었지만 송씨 가족과도 잘 알고 지냈고, 부담할 돈이 없다는 말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씨 어머니 명의로 벤츠가, 조씨 명의로 외제차와 국산 중형차 등 2대(총 2,700만 원 상당)가 계약됐는데 이 중 한 대는 계약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게 조씨 주장이다. 벤츠 할부금은 송씨가 두 차례만 내고 체납하면서 소송이 제기됐고, 결국 캐피탈 회사가 차량을 압류해 3,000만 원가량에 처분하면서 조씨 모친 앞으로 할부 잔액 1,700만 원과 체납 이자가 고스란히 남았다. 조씨 또한 캐피탈 회사로부터 상환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조씨 명의 차량은 또 다른 피해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명 넘게 "동일인에게 중고차 사기 피해"

2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송씨에게 중고차 사기를 당했다고 호소하는 피해자는 20여 명, 총 대출액은 15억 원을 웃돈다. 대부분 송씨의 친인척이거나 교회를 같이 다닌 지인이다. 피해자 고소장이 서울 양천경찰서와 서부경찰서에 각각 1건, 경기 광주경찰서에 5건이 접수되면서 송씨는 피의자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송씨는 '차를 금방 되팔아 10%의 수익금을 주겠다' '렌트 사업을 하고 있는데 수익금을 주겠다' 등의 말로 명의를 빌려 대출했다. 피해자가 대출 상환을 요청하면 다른 피해자 명의의 차량을 보내며 시간을 끌거나, '지금 사정이 어려우니 돈을 빌려주면 정리하겠다'며 추가로 돈을 요구했다.

송씨는 수사가 진행되자 피해자에게 차량을 보내 처벌을 피하기도 했다. 피해자 김모(53)씨가 지난해 11월 송씨를 경찰에 고소하자 송씨는 그 다음달 김씨에게 차량을 인도했다. 그러자 경찰은 '기망의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차량 할부금 등 금전적 피해는 민사적 사안'이라며 송씨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씨는 그사이 또 다른 사기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벤츠를 팔아 대출을 정리해 주겠다'는 송씨에게 인감증명서를 떼어 줬더니 이를 이용해 김씨 소유 차량을 다른 사람에게 몰래 팔았다는 것이다. 차량은 여전히 김씨가 보유하고 있지만 자동차등록원부상 주인은 다른 사람으로 바뀐 셈이다.

송씨는 제기된 의혹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그 사람들이 없는 사실을 지어서 말하고 있다"며 "차량은 모두 인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피해자는 "(내 명의로) 2021년식 벤츠를 사놓고는 다른 사람 명의의 2015년식 벤츠를 보냈다"며 "처분할 방법도 없으니 인도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피해자들은 "송씨가 차량을 돌려 막으면서 시간을 벌고 있다"며 조속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면허 없어도 빚 많아도… 손쉬운 캐피탈 대출

중고차 담보대출의 낮은 문턱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씨 가족의 경우 조씨는 전도사로 월급이 100만 원 남짓하고 어머니는 청소일을 해서 넉넉지 않은 데다 모두 운전면허도 없었지만, 동생을 차량 점유자로 지정해 수천만 원을 어렵지 않게 빌렸다. 2억 원 넘는 채무가 있는데도 대출을 받았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이들은 캐피탈 회사 앱을 통해 간단한 소득증명을 하니 바로 대출이 승인됐다고 했다.

캐피탈 업계에 적용되는 여신금융협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중고차 담보 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은 대출자의 신용평점이 하위 30%보다 높으면 100%, 즉 차값 전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 신용도가 하위 30%에 든다 해도 LTV는 80~90% 수준이다. 대출 한도는 하위 20% 이내는 2,000만 원, 10% 이내는 1,500만 원이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수입차의 경우 시세가 높아 대출이 많이 나오는 점을 악용한 것 같은데, 그렇더라도 대출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여신업계는 제도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중고차 담보대출은 지난해 110%였던 LTV를 100%로 낮췄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도 적용돼 무리한 대출이 승인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이용했던 캐피탈 회사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대출 과정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도 "절차에 따라 대출이 승인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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