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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연애해?

입력
2022.04.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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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스토리’는 젠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발송되는 뉴스레터를 포털 사이트에서는 열흘 후에 보실 수 있습니다. 발행 즉시 허스토리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메일로 받아보시면 풍성한 콘텐츠, 정돈된 화면, 편리한 링크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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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제가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료되는 지점은,
사랑에 부과된 모든 문화적 기대들과 가치들이
실제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수전 손택

Her View : 여성의 관점

인기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채널A '하트시그널'의 한 장면. 여러 차례의 데이트 장면이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남성은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고, 여성은 보조석에 앉는다. 채널A 캡처

인기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채널A '하트시그널'의 한 장면. 여러 차례의 데이트 장면이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남성은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고, 여성은 보조석에 앉는다. 채널A 캡처


<49> 어떤 로맨스인가

안녕하세요, 독자님. 허스토리입니다. 오늘은 연애 혹은 사랑 그 사이를 넘나드는 관계 맺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아니, 이렇게 엄중한 때에 무슨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몇 주 연속 정치·사회 뉴스를 계속해서 봐야 했기에 이번 주는 머리를 식혀보도록 해요. 자, 오늘도 가볼까요?

① 연애는 안 하지만 연애 버라이어티는 본다

'하트 시그널' '나는 SOLO' '솔로지옥' 등등. 바야흐로 연애 버라이어티 대홍수 시대입니다. 온갖 OTT가 돌싱, 재회, 골프, 댄스 등 다양한 변주 요소를 더한 짝 짓기 프로그램을 선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20대 여성들 사이에는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의미로 '4B(비혼·비출산·비연애·비성관계)' 실천이 잇따르는 등 관습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젊은 세대가 연애와 결혼에 적극적이지는 않으면서, 데이팅 프로그램은 열심히 보는 이유에 대해 한국일보 기사는 이렇게 분석합니다.

허수연 교수는 "20대 여성은 연애가 낭만적이지만은 않고 폭력이 되어 다가올 수도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집단"이라며 "연애와 결혼에 대해 갖는 불안감으로 이상적 연애를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직접 연애를 하기보다 관찰 예능을 통해 남들이 연애하는 걸 구경하면서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대리만족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

▶ 기사 보기 https://url.kr/krzvf8

연애 버라이어티 '나는SOLO'의 한 장면. SBS Plus 캡처

연애 버라이어티 '나는SOLO'의 한 장면. SBS Plus 캡처


② 어느 날 미디어 속 로맨스가 불편해졌다

고백하자면 저도 남몰래 연애 버라이어티를 무척 즐겨봅니다. 너무 무비판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아닌가 고민이 들 때도 있지만, 사랑을 둘러싼 천태만상을 지켜보는 게 무척 재밌지 말이에요. 어떤 장면을 보면서는 '비혼 의지'가 확고해지기도 하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반면교사 삼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즐겨 봤던 연애 버라이어티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평등 관점에서 시대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출연진 섭외, 편집 방향, 성별 고정관념 주입 등을 보면서 말이지요. 이 깨달음을 얻는 데에는 20대 인터넷언론 '고함20'의 '하트시그널의 여자들은 운전하지 않는다'라는 한 편의 글이 영향을 미쳤는데요. 제목만 보고도 수많은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왜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여성은 자리를 맡겨놓은 듯 보조 운전석으로 직행할까요. 데이트를 할 때 운전대는 왜 자연스럽게 남성의 몫일까요. 초면에 자기소개를 하는 도중 '남편을 따라 일을 포기할 수 있냐'고 묻는 남성은 왜 이리 빈번하게 등장할까요. 데이트 도중 자연스럽게 거절의 의사를 보이는 여성에게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의 모습을 제작진은 왜 편집하지 않고 고스란히 송출할까요.

일찍이 '상품의 낭만화'와 '로맨스의 상품화'라는 개념을 제시했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저서에서 어떻게 자본주의가 성적 자유를 점령해, 낭만적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는지 논증하는데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랑마저도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된 오늘날, 미디어가 젊은 남녀 한 쌍의 모습을 통해 계속해서 '로맨스'에 대한 환상을 주입하고 있는 건 아닌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③ 다양한 사랑의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

결국 이런 고민들은 '다양하고 평등한 사랑의 형태'라는 고민으로 귀결됩니다.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연애와 결혼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조금 더 평등한 연애'가 가능한가 고민하게 되는 거죠.

10년 이상 '한국의 연애변천사'를 강의하고 저술 작업을 한 김신현경 베를린자유대 연구원은 2018년 한국일보 인터뷰(https://url.kr/nwsajf)에서 "작금의 시대에 연애가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가능하지만 아주 어렵다고도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고,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사랑과 연애, 결혼 같은 가장 사적인 지점'에서도 평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고 진단했어요.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 우위에 있던 힘의 구도도 깨지면서 전통적 로맨스 관계는 위협받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같은 맥락에서 더 평등한 연애를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제시합니다.

"여성학 공부와 성찰은 ‘그 사람과 나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조형된 욕망을 투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연애를 했고, 관계가 그렇게 되었다’라고 깨닫는 과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는 그 성찰이 더 나은 사랑의 과정,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신현경 연구원, 한국일보 인터뷰 중

역시나 사랑은 정말 논하기 어려운 주제죠? 저는 이따금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의 관계 맺기에 대해 죄책감 등 불편한 마음을 느끼는 모습을 보곤 해요. 그런데 저는 4B 실천을 하는 분이든, 기혼이든, 어떤 형태의 관계에서든 성평등을 가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관계를 최대한 평등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기꺼이 성평등 세상에 파트너를 초대하면서 말이죠. 쉽지 않은 주제지만 어려운 고민을 건너갈 때마다 허스토리와 함께 머리를 맞대 보아요.

정부서울청사 여가부 현판. 연합뉴스

정부서울청사 여가부 현판. 연합뉴스

독자님, 여가부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에 여가부 공무원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앞서 인사혁신처가 인수위에 파견될 공무원을 추천하라고 각 부처에 전달했고, 여가부도 2명씩 추천명단을 전달했지만 배제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인수위가 '여가부 폐지' 입장을 확실히 한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여가부는 분위기를 다잡고, 꿋꿋이 해야 할 일을 하려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21일 서울 중랑구에는 서울북부해바라기센터가 다시 문을 열었는데요. 해바라기센터는 여가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경찰청이 손잡고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개소 소식이 알려진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격려의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루머와 악의 속에서도 자기 할 일을 하는 여가부 멋지다" "더 많은 해바라기 센터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 기사 읽기 https://url.kr/uv9ydl

여기까지 읽어 내려온 독자님께는, 한국일보 외부 필진인 신경아 한림대 교수의 칼럼 '어떻게 여기까지 온 성평등인데' (https://url.kr/nu56r8) 일독을 권합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성평등인데, 이렇게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데이팅 라운드

외로운 뉴요커들이 다섯 번의 소개팅에 도전한다. 어색하고 낯선 첫 만남에서, 그들은 특별한 인연을 만들 수 있을까? 밀고 당기는 아찔한 탐색전이 시작된다.

허스토리에서 '데이팅 프로그램' 소개라니, 갈 데까지 갔군! 이렇게 생각하시는 독자님들 계실 수도 있지만, 비판을 무릅쓰고 소개해요. 2년 전 쯤 이 데이팅 프로그램을 보고 저는 명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그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성애 기반 '정상 로맨스' 위주로 관계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한 회마다 한 명의 주인공이 다섯명과 소개팅을 합니다. 그리고 끝에는 누구를 선택하는지도 보여주죠. 여기까지만 보면 보통의 '국내 연애 버라이어티'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첫 화에는 멀끔한 백인 남성이 다섯명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거든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던 건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였어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데이팅 프로그램 결말 같지 않습니다.

그 중 저를 성찰하게 만든 건 3화부터였습니다. 데이트의 주인공으로 삼 년 전 부인과 사별한 백발의 장년이 등장하는가 하면, 레즈비언과 게이도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프로그램에 나와요. 하이힐을 신은 여성과 정장을 입은 남성의 조합을 '데이팅 프로그램' 공식으로 부지불식간에 학습한 제게 충격을 준 장면이었죠. '천편일률적 로맨스'를 의심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어요.

이따금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은 무척 버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젠더살롱'에서 소개했듯, 남들 다 웃을 때 웃을 수 없고 분위기를 깨는 존재가 되기도 하죠. 그리고 이성애에 기반을 둔 전통적 로맨스를 볼 때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는 건 또 어떻고요. 그런데 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오히려 다양한 종류의 마음과 다양한 관계로서 '사랑'의 의미를 한번 더 긍정하게 되었답니다.

본 뉴스레터는 2022년 3월 24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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