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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에도 실용주의 찾는 미국

입력
2022.03.2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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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미국 최초의 여성 흑인 연방대법관 지명자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 후보가 21일(현지시간) 상원 법사위원회의 이틀째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최초의 여성 흑인 연방대법관 지명자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 후보가 21일(현지시간) 상원 법사위원회의 이틀째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에 대한 관심은 도가 지나칠 정도다. 후보 인준청문회가 열리면 거의 모든 언론이 생중계를 하며 분석기사를 쏟아낸다. 미국이 판례로 움직이고 ‘9명의 현인’인 대법관들이 사회 변화의 판례를 제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 후임을 지명하면서 그 기준이 브레이어처럼 실용주의를 이해하는 법관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찾아낸 이가 흑인이자 여성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51)이다.

□ 바이든이 갑자기 꺼낸 사법 실용주의는 법치의 기본정신은 엄정한 법 집행이 아니라 갈등에 대한 타협, 절충이라고 본다. 올리버 웬들 홈스(1841~1935) 대법관이 남긴 “법의 생명은 논리에 있지 않고 경험에 있다”는 말에 응축돼 있다. 그런 입장에서 양자택일은 폭력이 되고, 어떤 행위의 정당성은 다른 세계,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에서 확보될 수 있다. 민주주의 역시 소수 의견에도 여지를 주어 다수 의견이 우세하도록 만드는 체제라고 얘기한다.

□ 23일까지 사흘간 열린 상원 청문회에서 잭슨은 자신의 사법철학이 법률이론보다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다고 했다. 스스로 해박한 이론가가 아닌 헌법상 의무에 충실하며 체험으로 접근하려 한 법조인이라고 했다. 공립고와 하버드대 로스쿨, 재판연구관, 국선변호인, 양형위원회 위원, 연방1심과 2심 판사를 거친 다양한 경력은 이런 잭슨을 잘 보여준다. 청문회 내내 잭슨은 노트북이나 자료 도움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답변해 깊은 인상을 심어 줬다. 인준을 통과하면 대법원 구성에 다양성이 확대될 것은 분명하다.

□ 김지형 전 대법관은 최근 토론모임 플랫폼의 정책제언에서 “법치의 근본은 갈등에 대한 절충과 타협을 통한 해결책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그런 부분에서 얼마만큼 시스템적으로 갖춰져 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법관들조차 진실도 파괴하지 않고 평화도 지키는 타협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잭슨이 지명된 지난달 25일은 세계를 다시 양자택일의 시대로 이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다음날이다. 우리 사회도 그렇지만 관용과 타협, 다양성을 존중하는 실용주의는 패권, 폭력으로 얼룩진 현실 세계에 절실하다.

이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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