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히틀러의 그림에 악마는 없었다

입력
2022.03.24 19:00
25면
0 0
김선지
김선지작가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독재자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노이슈반슈타인 성', 1914년(출처 위키미디어)

아돌프 히틀러, '노이슈반슈타인 성', 1914년(출처 위키미디어)

아돌프 히틀러는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악명 높은 인물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대통령 푸틴 덕분에 그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푸틴과 히틀러의 얼굴을 합성한 '푸틀러' 사진까지 등장했다. 그의 몰락 이후 80여 년간 히틀러는 전례를 찾기 힘든 광포한 학살자, 인간 괴물의 대명사였다. 뜻밖에도, 히틀러는 그림 그리기를 매우 좋아했던 화가이자 예술 애호가이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 고전 조각을 사랑했고 바그너를 숭배했다. 히틀러의 그림은 어땠을까? 많은 비평가들은 그가 평범한 아마추어 화가에 불과했으며 그림도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없다고 혹평한다. 이 사악한 독재자의 그림은 정말 예술적으로 형편없었을까?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태어난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가 평범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한 아버지는 아들의 예술적 재능과 야망을 무시하고 린츠의 실업계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학교를 중퇴한 18세의 히틀러는 화가가 되기 위해 아름다운 예술 도시 빈으로 간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일하는 틈틈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빈의 건물이나 랜드마크 엽서 그림을 모사한 유화, 수채화 소품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히틀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의 교회, 호수, 성 같은 목가적인 풍경도 즐겨 그렸다.

아돌프 히틀러, '산이 있는 호수의 집', 1910년(출처 위키미디어)

아돌프 히틀러, '산이 있는 호수의 집', 1910년(출처 위키미디어)

그의 작품 대부분은 건물과 풍경을 그린 것이며,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히틀러는 특히 건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빈 시절 일찌감치 도시의 거대한 호텔과 상점, 새로 지어진 훌륭한 건축물들에 매혹되었다. 히틀러의 건물 그림은 건축 설계 도안처럼 딱딱해 보이며,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소시오패스적 성향과 연관시키는 이들도 있다.

히틀러의 작품에 대해서는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지고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독창성이 없다는 부정적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악행을 연상하지 않고 그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히틀러는 엽서 그림을 모사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미술학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 만약 히틀러의 작품이란 것을 모르고 본다면 꽤 괜찮게 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만, 건물 일러스트레이션엔 훌륭했지만 사람을 그리는 데는 별로 능숙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빈 미술 아카데미에 두 번이나 지원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사실, 그의 누드 그림들을 보면 인체 해부학이나 얼굴 표정 묘사에 있어 매우 서툴다. 또한, 20세기 초는 뒤샹, 칸딘스키, 피카소와 같은 혁신적인 예술가들이 등장한 모더니즘의 시대였다. 히틀러의 그림은 한물간 구시대의 전통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신화, 민담,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을 좋아했고, 그저 그들의 작품을 베꼈다. 그에게는 현대미술계 천재들의 독창성, 새로운 예술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었다.

아돌프 히틀러, '뮌헨의 오래된 주택 안뜰', 1914년(출처 위키미디어)

아돌프 히틀러, '뮌헨의 오래된 주택 안뜰', 1914년(출처 위키미디어)

비평가나 심리학자들은 히틀러의 그림 속에서 그의 악마적인 삶과 정신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그린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보자. 이 역사적인 괴물은 인간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고 싶어 했다. 그의 인생은 망상과 광기로 얼룩졌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진지했고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예술가를 꿈꾸었던 순수한 소년의 영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유대인 소녀와의 따뜻한 우정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 역시 그를 전무후무한 소시오패스 냉혈한으로 알고 있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히틀러는 나치의 중요한 정책을 구상했던 알프스의 베르크호프 별장에서 알게 된 7세짜리 소녀 로사와 5년간이나 만나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총통의 아이' 로사는 히틀러를 삼촌이라 불렀고 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소녀가 유대인인 것이 곧 밝혀졌지만 히틀러는 우정을 깨지 않았다.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였고 동물보호법을 만들 정도로 동물을 끔찍이 사랑했다. 최소한 군중 앞에서의 히틀러는 유쾌하고 다정하며 친절한 사람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했다. 악은 이렇듯 평범한 얼굴로 늘 우리 곁에 있다. 선과 악이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명확히 구분되어 있을까? 파렴치한 범죄자나 잔혹한 살인자를 다룬 기사에 주렁주렁 달린 폭력과 살의로 가득 찬 댓글들, 나와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고 사악한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들 대부분은 어떤 면에서는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일 것이다. 자신만이 선하고 정의롭다고 믿기 때문에 악이라고 규정한 상대를 용납하지 못할 뿐이다. 히틀러와 그의 맹목적인 지지자들도 그랬다. 그의 그림은 죄가 없다. 애꿎은 그림에서 이상 성격을 발견하려고 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지 생각해보는 게 합리적이다.

히틀러는 정치가로도 예술가로도 실패했다. 그 무엇보다도 인간으로서 실패했다. 그가 남긴 수백 점의 그림 역시 인류사상 가장 끔찍한 악인을 증언하는 혐오스러운 역사적 증거물로만 그 존재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