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일본에서 법률상 국가로 볼 수 없으므로 북한 정부에 대해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판단이 일본 사법부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건너갔다가 가혹한 생활 끝에 탈북한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판결에서다.
24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전날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는 북송 사업 참가자 5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5억엔(약 5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 소송의 원고는 1960~70년대 북송 사업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2001~2003년 사이 탈북해 일본에 거주하는 가와사키 에이코, 이시카와 마나부 씨 등 5명이다.
이들은 북한의 선전과 달리 북한에서 근근이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다고 증언하며, 북한 정부가 ‘지상 낙원’ 등 허위 선전 문구로 북한에 올 것을 권유하고 북한에 머물게 한 것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4세 때 형, 누나와 함께 북한에 갔다가 2001년 탈북한 이시카와 씨는 1990년대 기근으로 아사한 시신을 마을 곳곳에서 목격했다.
북송 사업은 북한과 일본이 체결한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59년부터 1984년 사이에 조총련계 재일교포들이 북한으로 건너가 정착하도록 한 것이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 따르면 북한에 간 약 9만3,000명 중에는 일본인 처와 일본 국적 자녀가 6,679명 포함돼 있다.
법원은 북한 정부가 “사실과 다른 선전으로 원고가 북한의 상황을 잘못 믿게 했다”고 인정했으나, 배상을 요구할 권리를 20년으로 정한 ‘제척 기간’을 적용해 청구를 기각했다. 이시카와 씨는 “제척 기간을 이유로 기각한 판결은 배상 명령을 내리는 데서 도망친 것처럼 느껴진다”고 불만을 표했다. 변호인도 “청구가 인정되지 않아 유감”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혔다.
이 소송은 북송 사업과 관련해 북한 정부의 책임을 따지는 일본 내 첫 민사재판으로 관심을 끌었다. 북한 정부 측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소송의 인정 여부나 원고 측 청구에 대한 답변서 등도 제출하지 않았다.
또 이번 소송은 북한 정부에 민사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 여부도 관심이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한 국가가 다른 국가 법원에서 피고로 소송을 당할 수 없다는 '주권 면제' 원칙을 강조해 왔으며,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주권 면제를 이유로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이번 판결의 경우 재판부는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국가로 승인 받지 않아, 일본의 민사재판권이 면제되는 법률상 ‘나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재판을 할 수 있다고 처음으로 판단했다.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민사재판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고 대리인인 후쿠다 겐지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인권 침해를 일본의 민사 재판으로 추궁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의의는 크다”며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 등도 책임을 추궁할 가능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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