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에서 빌런(히어로들과 대치하는 악당)이 사라졌다. 갈등을 일으키는 주 요소가 사라졌지만 의외로 이야기는 순탄하게 흘러간다. 왜 빌런의 입지가 약해졌을까.
최근 드라마 인기 최정상을 달리고 있는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SBS '사내맞선'에는 빌런(히어로들과 대치하는 악당)이 없다. 수십 년간 드라마에는 악인들과 주역들이 대립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빌런은 히어로물, 권선징악식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러브라인에 개입해 오해를 자아내고 대립 구도를 만드는 이들을 통상적으로 빌런이라고도 부른다. 또 청춘 성장 드라마에는 라이벌을 빌런으로 삼고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로 만들기도 한다.
먼저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모두가 작가의 사랑을 톡톡히 받고 있다. 극 초반 고유림(보나)가 나희도(김태리)에게 적대심을 드러냈지만 이 역시 인물의 서사가 풀어지면서 둘도 없는 단짝 사이가 됐다. 또 펜싱부 코치인 양찬미(김혜은)이 의미심장하게 나희도를 받아주면서 긴장감이 어렸지만 이는 곧 나희도의 엄마 신재경(신재희)과의 과거 이야기로 인한 대사로 드러났다. 청춘 드라마에서 흔히 볼 법한 라이벌 구도가 사라지고 전반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내적으로 성장하는 개연성에는 크게 무리가 없다.
'사내맞선'은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도 없다. 신하리(김세정)과 강태무(안효섭)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고 연애를 시작한다. 차성훈(김민규)와 진영서(설인아)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민우(송원석)이 신하리를 향한 마음을 뒤늦게 깨닫지만 대립구도에 놓였다기보단 신하리의 과거 서사를 풀어내는 용도로 활용된다.
한때 빌런들이 크게 각광받기도 했다. 지난해 SBS '펜트하우스'에서는 주단태(엄기준)과 천서진(김소연)이라는 악인을 만들어내면서 신드롬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지금의 드라마국에는 그와 대적할 빌런이 존재하지 않는다. tvN '군검사 도베르만'의 경우 최초의 여자 사단장인 노화영(오연수)과 그의 아들 노태남(김우석)을 악인으로 세웠지만 노태남은 어딘가 어설프다. 사건을 악화시키면서 주인공을 궁지로 모는 역할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또 JTBC '기상청 사람들'은 한기준(윤박)과 채유진(유라)가 진하경(박민영)과 이시우(송강)을 버리고 맺어진 커플로 빌런처럼 그려지지만 이들 역시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지질한 전 연인처럼 나오는 두 사람은 서로 갖고 있었던 콤플렉스를 고백하면서 보는 이들을 설득한다. 인간적이면서 공감대를 조금씩 늘려가는 한기준과 채유진에게 시청자들은 조금씩 스며드는 중이다.
이처럼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들에는 빌런이 필요치 않다. 해답은 시청자들의 니즈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시청자들은 느리고 더딘 전개를 참지 않는다. 이른바 '고구마식 전개'에 쉽게 짜증을 내고 작품을 이탈한다. 또한 억지 갈등을 쉽게 간파하고 피로도를 호소한다. 연출진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적극 고려해 빌런의 최소화 혹은 과감한 삭제를 결정했다. '빌런 없는 웰메이드 드라마'가 각광받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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