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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온 '생활 정치'

입력
2022.03.2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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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 전 장관 모습. 뉴스1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사진은 지난해 4월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김 전 장관 모습. 뉴스1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난 21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제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 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 정치의 시대”라면서 자신이 이 시대에 적합한 정치인인지를 자문자답해봤다고 언급했다. 그는 세대 문제가 아니라 개인 문제로 봐달라고 했으나 86그룹의 맏형 격인 그가 던진 질문은 용퇴 압박을 받는 민주당의 86세대 정치인들도 비켜갈 수 없다.

□ ’거대 담론이 저문 생활 정치의 시대’는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다. 이미 2000년대 초반 학계나 시민사회 등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론과 함께 제기됐던 담론이다.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시민들의 권리를 확대하는 등 자생적인 시민운동을 활성화해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진전시키자는 취지다.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한 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등이 퇴조하자 정치 투쟁 일변도의 사회운동을 성찰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 하지만 지난 시기를 돌아보면 86세대 운동권 인사들의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거대 담론 구도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더 강고한 진영 논리로 강화해 상대를 악마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2000년대에 왕성했던 시민단체들의 활동 역시 정치 투쟁에 매몰돼 시민 없는 시민운동으로 변질됐다. 시민운동가들은 그 명성을 담보로 정치인으로 변신했고 시민단체들도 풀뿌리 시민들의 참여가 아니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해 정치권의 이중대 역할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사회 영역에 뿌리를 내린 생활 정치인이 아니라 오로지 승자 독식의 정권 인수에만 혈안이 된 선거 전문가가 됐던 셈이다.

□ 이제 와서 생활 정치 언급을 듣는 것은 생뚱맞다. 그나마 김 전 장관이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은 진정성을 인정받을 대목이지만 그의 은퇴가 민주당의 쇄신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생활 정치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86세대 정치인들이 그 정치적 세계관을 바꾸리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활 정치 시대를 정계 은퇴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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