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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을 용인하는 교인들…"한국 교회가 트라우마에 빠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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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을 용인하는 교인들…"한국 교회가 트라우마에 빠졌기 때문"

입력
2022.03.24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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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한국 기독교의 산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에 북한에서 수도권으로 내려온 목회자들이 많았죠. 그분들이 본인들의 상처를 해소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북한의 박해를) 경험한 세대의 집단 트라우마가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던 세대로 전이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지은 작가

한국 개신교계는 때때로 자정능력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일부 목회자들이 범죄 의혹이나 세습 논란이 불거지고도 교회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종교계 밖에서는 ‘교인들은 왜 반발하지 않을까?’ 궁금해할 뿐이다. 비판적 교인은 소수파가 돼 주변과 불화하다가 오래 다니던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목사를 중심으로 주류와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김지은 작가는 교회 내부에서 벌어진 문제로 상처받은 교인들을 위해서 책을 썼다면서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김지은 작가 제공

김지은 작가는 교회 내부에서 벌어진 문제로 상처받은 교인들을 위해서 책을 썼다면서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김지은 작가 제공


박해 당한 트라우마…비판을 위협으로 인식

김지은 작가는 최근 출간한 ‘한국교회 분단과 분열의 트라우마를 넘어서’에서 그 이유를 한국 개신교계가 분단이 만들어낸 집단 트라우마에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북한으로부터 박해를 당한 집단적 기억 때문에 안팎의 비판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거부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15일 그에게 한국 개신교계를 사로잡은 집단 트라우마에 대해서 들어봤다.

고려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연세대에서 통일학 박사 과정을 밟은 김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집단 트라우마의 뿌리를 찾았다. 개신교가 평양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다가 북한으로부터 박해를 당한 역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목숨을 잃은 목회자도 있었다. 이후 많은 목회자가 수도권으로 피난했다. 황무지에 세운 교회는 수만명, 수십만명이 다니는 대형교회로 거듭났다. 목사와 교인들은 박해와 회복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스스로를 희생자로 인식하는 '희생자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유교문화의 가부장적 요소가 교인들을 ‘카리스마 넘치는’ ‘밑바닥에서 일어난’ 목사를 선호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이처럼 가해자와 희생자, 선과 악으로 나뉜 세계관에서 ‘우리’와 다른 목소리는 공동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형교회들 집단 트라우마 확연해

집단 트라우마는 대형교회들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김 작가는 설명했다. 원로 목사를 기업의 창업주처럼 대우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교회는 공동체이지 재산이 아니지만 일부 교인들은 담임목사 세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은 형식적으로 진행된다. 김 작가는 자신이 10년간 출석하던 대형교회에서 이러한 현상을 목격했다. 김 작가는 “원로 목사가 지나간다면 교인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교회 내부 상점에서는 목사의 사진을 팔았다. 성전 한편에는 원로 목사의 신앙의 상징이라는 새벽종을 세워놨다. 개인의 상징을 왜 여기에 세우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비판적 교인에게는 ‘이상한’ ‘삐딱한’ 사람이라는 시선이 쏟아진다고 김 작가는 털어놨다.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교인이라면 상처도 크다. 집단에서 배제됐다는 상실감에 개인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한다. 김 작가도 그러한 문화에 익숙한 교인이었다. 세습에 대한 소문을 접했지만 실제로 벌어지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김 작가는 “대학부에서 리더 역할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했던 경험이 있다. 원로 목사를 황제에 비교한 한 친구에게 ‘왜 그렇게 이야기하느냐’라고 했다. 어떤 면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많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신앙생활 계량화, 교회에만 수렴되는 부작용

김 작가는 대형교회가 신앙생활을 계량화하는 점도 교인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교인의 신앙생활을 도우려고 고안한 방법이지만 교인들이 수치에 매달리게 되는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이야기다. “대학부, 청년부에 그룹을 두고 그룹장이 그룹원을 케어(관리)한다. 이번 주에는 예배를 몇 번 드렸고 성경은 얼마나 읽었고,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는지 등이 보고로 요약된다. 신앙이 계량화되면서 교인들의 생활이 점점 교회 안으로만 수렴되는 측면이 있다. 교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진짜 신앙인데 큰 교회에서는 바깥에 나갈 기회가 없다. 교회 안에서 모든 관계가 충족된다.”


집단 트라우마 극복하려면…제도적 변화 필요

집단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희생자 정체성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작가는 저서에서 공동체를 집단 트라우마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 고안된 다양한 이론, 방법들을 소개한다. 1980~1990년대 포르투갈과 스페인, 동유럽 등에서 공산주의 또는 독재정권의 과오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논의된 ‘이행기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복잡한 개념의 골자는 가해자는 처벌하고 피해자에게는 보상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이행기 정의 실천에는 사법적 처벌과 금전적 피해보상, 명예회복 등이 진행됐다. 이를 바탕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한편, 권력(가해자)과 피해자의 화해가 진행되기도 한다.

교회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한다. 목회자의 성범죄처럼 사법적 처벌이 진행되는 사건뿐만 아니라 세습처럼 교회 내부의 사건에서도 교인들은 상처를 받는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이후에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이 존중받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다. 다만 교단도 제재하지 못하는 일부 대형교회들이 존재하는 한국 개신교계에서 누가, 어떻게 이행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한국 교회 분단과 분열의 트라우마를 넘어서. 김지은 지음ㆍ홍림 발행ㆍ212쪽ㆍ1만4,000원

한국 교회 분단과 분열의 트라우마를 넘어서. 김지은 지음ㆍ홍림 발행ㆍ212쪽ㆍ1만4,000원


무엇보다 교인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애써야

김 작가는 제도적 개선 이전에 무엇보다 교인들이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목회자와 교회의 방침에 순종하게 길들여진’ ‘무비판적으로 목회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교인들이 교회의 희생자 정체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래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목사가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더라도 교인들이 서포트(지원)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김 작가는 개신교계 안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것도 책을 쓴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한국 교회에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책임감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련자들의 '치유와 회복'

개인적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피해자는 살아가야 한다. 김 작가는 저서에서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의 주장을 인용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환경들은 스스로 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이며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할 때도 우리가 취하는 태도와 그로부터 발견하는 ‘의미’를 통해 한계를 뛰어넘는 자기 초월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세습으로 공동체가 쪼개지는 상황을 경험했던 김 작가는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치유와 회복”이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책에서 이런저런 비판을 했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면서 “후배들이 힘들다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연락해오기도 한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물론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상실감과 부채감이 있다. 그들은 아픈 마음을 공적으로 이야기할 기회도 없다. 그들에게 제 책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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