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 영화 '벨파스트'
영화는 평화로운 항구 풍경으로 시작한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화면을 채운다. 영국 북아일랜드 주도 벨파스트의 번영과 풍요를 상징하는 듯한 컬러화면은 흑백으로 곧 변하며 1969년 8월 15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흑백화면은 흔히 과거를 묘사할 때 쓰인다. 하지만 영화 ‘벨파스트’에선 다른 의미가 있기도 하다. 우리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인, 흑백논리의 세상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암시한다.
버디(주드 힐)가 스크린 중심인물이다. 쓰레기통 뚜껑을 방패 삼아 또래들과 칼 싸움 놀이를 하는 9살 철부지 소년이다. 버디가 사는 동네는 평범해서 평화롭다. 아이들은 길에서 뛰논다. 엄마들은 밥 먹을 때가 되면 아이들 이름을 부른다. 일상의 행복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신교도 과격분자들이 가톨릭 신자 집을 공격하면서부터다. 버디 가족이 사는 동네는 신교도와 가톨릭 신자들이 섞여 있다. 동네사람들은 그저 서로를 이웃으로 여기며 지냈으나 폭력사태 후 동네 모습은 바뀐다. 군대가 파견되고, 동네 사람들이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스스로를 방어하려 한다. 예전과 달리 서로를 향한 경계의 눈초리가 강하다. 평화롭던 동네는 신·구교 분쟁의 중심에 놓인다.
버디의 집안은 신교도다. 가톨릭교도의 고백성사를 우스꽝스럽게 여기긴 하나 그들을 증오하거나 혐오하진 않는다. 아빠(제이미 도넌)는 과격분자들이 자신들의 권력 구축을 위해 분쟁을 부추긴다고 여긴다. 폭력배 출신 동창이 신교도 지하조직에 합류할 것을 강권하나 아빠는 거부한다. “우리 편이 아니면 우리 적이 되는 거야”라는 경고가 따른다. 경제적 곤란까지 겹친다. 가족은 위태롭다.
공포와 혼란과 위협 속에서도 아이는 자란다. 버디는 짝사랑을 하고 공부를 하며 때론 일탈을 한다. 아빠는 평일엔 잉글랜드 쪽에서 일을 하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버디는 가족과 극장에서 서부극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보거나 모험극 ‘치티 치티 뱅 뱅’(1968) 등을 관람하며 정의를 배우거나 꿈을 키운다. 버디 가족이 즐기는 영화와 공연은 흑백인 현실과 달리 컬러다. 버디는 그렇게 영화와 공연을 통해 흑과 백 양극단 사이에 엄존하는 총천연색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다.
북아일랜드 신·구교 분쟁은 종종 투사나 영웅의 특별한 이야기로 스크린에 소환되고는 한다. 주로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요원이 화면 중심을 차지한다. 교도소에서 단식 투쟁을 하다가 숨진 IRA 지도자 보비 샌즈의 삶을 그린 ‘헝거’(2008)가 대표적이다. ‘벨파스트’는 분쟁에 적극 관여된 이들이 아닌, 싸움으로부터 한발 비켜 선 보통사람들의 시선으로 역사의 한 때를 되짚는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삶의 뿌리를 옮겨야 했던 이들의 고난과 고뇌를 스크린에 새긴다. 평범한 이들의 범상한 사연은 공명을 이끌기 충분하다.
배우 겸 감독인 케네스 브래나가 자신의 유년기에 대해 각본을 쓴 후 메가폰까지 잡았다. 브래나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으로 인한 봉쇄 기간 동안 각본을 썼다고 한다. 수입배급사 유니버설 픽쳐스에 따르면 그는 “이 이야기는 단지 선택의 기로에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 작은 가족 집단의 이야기가 아닌 1969년 사람들을 가두었던 바리케이드와, 한 가족이 보금자리를 떠날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주변의 제약이라는 봉쇄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벨파스트’는 27일 오후(현지시간) 열릴 제94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파워 오브 도그’ ‘코다’와 함께 작품상을 다툴 영화로 꼽힌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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