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 인터뷰
대학 시절부터 34년째 고기 없는 식단
PC통신 들어오며 동료 활동가 만나
"인간부터 반려동물, 전시·실험·농장동물까지
모든 생명이 평화 공존하는 사회 만들어야"
개, 고양이, 병아리, 말...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매주 다른 동물 탈을 쓰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외친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시절부터 20년 넘게 꾸준히 활동해 온 그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동물은 말을 못하니까 사람이 대신 이야기해야 한다"며 운을 띄웠다.
1988년 평범했던 경제학도가 동물을 먹지 않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이 대표는 대학시절 식사자리에서 식탁에 올라온 고기를 앞에 두고 '이건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소, 돼지, 닭 등 수많은 동물이 미식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데 부담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영양학 책 100여 권을 독파한 끝에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그는 채식을 시작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전방 입소 훈련에선 맨밥에 고추장을 찍어 먹으며 일주일을 버텼고, 식단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카투사에 지원했다. 그는 34년 차 비건으로 사는 지금도 젓갈 없는 김치, 두부 넣은 찌개로 간소한 식사를 하고 있다.
"정보를 찾고 싶어도 스마트폰은 물론 인터넷이 보급돼 있지 않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었어요. 태평양 한가운데 무인도 같은 느낌으로 홀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채식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던 시절 혼자만의 싸움을 하던 그는 1997년 PC통신이 들어오면서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채식 동호회 활동으로 용기를 얻은 그는 2000년 비영리단체인 한국동물보호연합을 만들었다. 현재 동물보호연합 회원은 8,000명이 넘는다.
"당시 동물단체는 애완동물만 얘기했어요. 동물은 반려의 개념이 아니라 '좋아해서 가지고 논다'는 애완의 대상에 가까웠죠." 동물권을 외치려 모였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고 전시·실험·농장동물의 권리는 뒤처졌다. 2011년 구제역이 확산하면서 돼지 생매장이 빈번할 때 그는 경기 이천의 한 농장에 잠입해 잔혹한 현장을 영상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구덩이에 3,000마리를 산 채로 밀어 넣는데 처참했어요. 돼지들이 살려달라고 울고 비명을 지르는데 마음이 아프고 환청이 들려 몇 주 동안 밥을 못 먹었어요."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고기 판매 금지 운동을 하다가 개 농장 주인에게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매주 개 식용 금지, 생매장 살처분 금지, 비료를 위한 수평아리 도살 금지 등을 외치고 있다. 퍼포먼스를 위해 종류별로 구입한 동물 탈만 100개에 이른다. KBS '태종 이방원' 낙마 사고 이후에는 말 가면을 쓰고 밧줄에 묶여 넘어지는 퍼포먼스를 했다. 개 농장 반대 시위를 할 땐 철창, 살처분 반대 시위를 할 땐 마대 안에 들어갔다. "20년 전만 해도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동물 복지냐는 얘기를 들었지만, 요즘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게 피부로 느껴져요." 비가 내려 바닥에 물이 가득해도, 등허리까지 다 젖어 감기에 걸려도 그가 광화문광장에 눕는 이유다.
"한 나라의 도덕성과 문화 수준은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처럼 그는 동물 복지가 인간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동물이 건강해야 인간이 건강하고, 동물이 행복해야 인간이 행복하거든요. 사람만이 잘 먹고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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