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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 이끈 ‘엔저’, 이제 일본 경제 ‘리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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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 이끈 ‘엔저’, 이제 일본 경제 ‘리스크’로

입력
2022.03.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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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9년 맞은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

지난 2016년 8월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본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6년 8월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본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중앙은행이 장기간 추진해온 금융완화를 통한 엔화 약세 유도 정책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해 도전 받고 있다.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수출에 기여하고 주가를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경상수지 적자 규모를 더 확대하는 데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일로 취임 9년을 맞이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3월 취임 직후부터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실시해 엔저를 유도했다. 당시 아베 신조 내각은 ‘아베노믹스’를 내걸어 금융완화를 포함한 ‘세 개의 화살’로 ‘잃어버린 30년’이라 일컬어지는 장기 경제 침체와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 인플레이션’ 목표는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엔화 약세가 장기간 지속되자 도요타 등 수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고, 주가도 30년 전 수준으로 회복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은 30년간 꿈쩍 않던 일본의 소비자물가에도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임금 상승 등 일본 정부가 강조해온 ‘경제의 호순환’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에너지와 곡물 가격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원치 않는 인플레를 겪게 된 것이다. 이미 기업 간 거래 물가는 수개월 전부터 10%대 상승률을 보였으나 아직 이를 최종 소비자가격에 전가하지 못하고 있어, 지난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대비 0.9% 상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단행된 이동통신 요금 인하 효과가 종료되는 4월부터는 본격적인 ‘2% 인플레’ 시대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경상수지도 적자로 전환되는 등 일본 경제의 기초 체력에도 위험신호가 켜지고 있다. 앞서 17일 발표된 무역수지는 6,682억 엔 적자로 7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1월에는 사상 두 번째로 많은 2조1,934억 엔의 무역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해외 자산이 많은 일본은 무역수지에서 일부 적자를 기록하더라도 자본수지에서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함으로써 경상수지는 장기간 흑자를 이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3,708억 엔)과 올해 1월(-1조1,887억 엔) 경상수지마저 적자를 기록했다.

‘엔화가 약세면 일본 기업 주가는 상승한다’는 통설도 무너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3주 동안 엔화는 달러 대비 4%나 하락했지만 닛케이 평균주가 상승률은 약 1%에 그쳤다. 신문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저가 겹쳐 일본의 수입 물가가 한층 높아지면 기업의 비용 부담도 커져 실적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이 8% 가까운 인플레이션에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반면 구로다 총재는 금융완화 방침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 후에도 “(소비자물가가) 2%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의 금융정책을 수정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며 “문제는 유가 상승이지 엔저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오히려 “엔저는 전체적으로 일본 경제에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엔화 약세가 과도하게 진행되면 기업과 가계 부담이 늘어나 경제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도 강해질 수 있다”며 “상황을 파악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일본은행이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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