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무단 주거진입 등 경찰 무리수에… 외국인 마약사범 단죄 차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무단 주거진입 등 경찰 무리수에… 외국인 마약사범 단죄 차질

입력
2022.03.21 04:45
수정
2022.03.21 08:22
10면
0 0

동의 없이 주거 진입·진술거부권 미고지
경찰, 필로폰 물증 확보하고도 1심서 무죄
임의동행 거부권 고지 없어 투약사범 석방
별건 영장 수사 경찰관이 되레 기소되기도
"의사소통 어렵고 불법체류에 절차 안 지켜"

마약류 관련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마약류 관련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찰이 외국인 마약범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절차 위반과 인권침해 논란으로 수사에 차질을 초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마약류 유통 근절을 위한 수사 못지 않게 적법 절차 준수에 세심히 신경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태국인 여성 A씨는 지난해 8월 향정신성 의약품인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추정 물질이 거주지에서 발견돼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A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마약류를 거래하려 한다는 국가정보원 첩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나섰다. 임의동행으로 충남경찰청에 출석한 A씨는 모발과 소변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자 자백했다.

하지만 A씨는 지난달 15일 대전지법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경찰이 A씨를 체포하려고 주거지에 진입할 때 자발적 동의가 확인되지 않은 게 문제였다. A씨가 하의 착용 없이 티셔츠만 입고 있었던 데다 한국어 소통능력도 부족하고 초인종 소리만 듣고 문을 열어준 점을 보면 사복 차림 경찰관 4, 5명의 진입에 동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진술거부권 고지 없이 경찰이 국정원 첩보 인물이 A씨와 동일인이라고 확인하자마자 필로폰 소재를 물으며 A씨 진술에 따라 손가방에서 필로폰을 찾은 것도 위법한 증거 수집으로 인정됐다. 결국 A씨 진술을 토대로 확보한 물증들은 위법 절차에 따른 2차 증거로 판단돼, A씨는 필로폰 소지와 투약 혐의도 면죄부를 받았다.

임의동행 과정에서 위법 절차가 드러나 재판에 세우지도 못하고 풀어준 사례도 있었다. 필로폰 투약 의심을 받던 태국인 B씨는 임의동행으로 경찰에 간 뒤 마약 양성 반응이 나와 긴급체포됐고 구속 송치됐다.

하지만 울산지검은 B씨가 임의동행 거부 권리를 고지받았다면 경찰에 제 발로 가지 않았을 사정을 확인하면서 경찰의 임의동행 자체를 문제 삼았다. 때문에 임의동행 뒤 진행된 소변 채취 등도 위법 증거로 간주돼 B씨는 지난해 8월 혐의 없음으로 석방됐다.

전문가들은 국제 마약범죄 등 외국인 범죄 확산에 따라 외국인 단속이 늘어나면서 경찰의 절차 위반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전체 마약류 단속사범의 9.5%(1,529명) 수준이던 외국인은 2020년 10.8%(1,958명)로 늘더니, 지난해에는 14.5%(2,339명)까지 급증했다.

박진실 변호사는 "외국인 마약사범은 의사소통이 어렵고 불법 체류자도 많은 탓에 이미 경찰에 약점을 잡힌 채 수사받는 경우가 많다. 내국인 수사 때보다 절차 준수에 둔감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A씨와 B씨는 불법 체류자였다. 법조계 일각에선 마약사범 집중 단속기간 중 외국인 검거 가점 방침도 경찰의 무리한 수사 배경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엔 영장이 기각됐는데도 외국인 투약사범을 별건으로 강제수사한 경찰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경찰청 한 간부는 지난해 9월 충북 진천에서 불법 체류 중인 인도인 C씨를 수사하려고 신청한 통신·압수·체포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주거침입 혐의로 발부받은 체포영장으로 C씨를 체포했다.

하지만 해당 간부는 C씨 의사에 반해 소변을 채취한 뒤 마약수사대 사무실에 C씨를 붙잡아두고 수사한 혐의를 받았다. C씨에게 수갑을 채운 뒤 1시간 동안 마약 증거를 찾겠다며 숙소 내 옷장과 서랍 등을 불법 수색하기도 했다. 서울동부지검은 해당 간부를 직권남용 감금 등의 혐의로 지난달 재판에 넘겼다.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실적을 의식한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이 영장주의에 반하는 수사 방식에 갈수록 제동을 걸며 증거능력을 엄격히 따지는 만큼, 마약 유통 등 죄질이 안 좋은 범죄에 엄정 대응하려면 수사 절차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현성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