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루저의 나라' 저자 고혜련 교수
19세기 말 20세기 초 독일인 3인의 한국 답사기 수록
"높은 고대 문화 수준 간직한 대한제국,
고난 속에서도 한번도 정체성 버린 적 없어"
"현재 조선이 중국, 특히 일본보다 문화 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여행자들의 표현대로 조선이 가난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라였다면, 조선 때문에 그토록 끊임없이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1898년 2월부터 1899년 6월까지 대한제국을 방문한 독일인 브루노 크노헨하우어(1861~1942)는 1901년 2월 베를린 독일식민지협회에서 가진 대중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9년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으로 독일 바이에른주 뷔르츠부르크대에서 한국예술사와 한국사 강의를 하고 있는 고혜련(61) 교수는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 '코레아(Korea)' 전문을 처음 발견한 하이델베르크대 연구년 시절을 잊지 못한다. 고 교수는 단국대에 재직하다 2017년 5월부터 2019년 2월까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그는 당시 독립기념관의 위탁으로 한국독립운동사 독일어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 강연문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었다. 독일 산림청 공무원인 크노헨하우어는 대한제국 광산 채굴권 취득을 위해 방한했다. 그의 강연 전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은 고 교수가 처음이다. 크노헨하우어는 이 강연에서 조선인을 향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호감을 표현한다. 일시 귀국해 15일 한국일보를 찾은 고 교수는 "그간 일부 논문에서 크노헨하우어가 조선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평가해 왔지만 이는 그의 강연문 전체를 보지 않은 탓"이라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이렇게 발굴한 크노헨하우어의 강연 전문과 독일 예술사학자 페터 예센(1858~1926)의 조선 여행기, 독일 지리학자 헤르만 라우텐자흐(1886~1971)의 백두산 여행기 등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걸쳐 조선을 다녀간 독일인 3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아한 루저의 나라'를 지난해 말 펴냈다.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독일 신문, 독일 대학 소장자료 등을 통해 대한제국의 역사를 바로 알리고자 한 책이다. 그는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13년의 짧은 역사에 불과해 우리 스스로 간과해 온 대한제국 역사의 특별한 의미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독일인 3인의 눈에 비친 대한제국은 높은 수준의 고대 문화를 간직한, 자주적 개화를 위해 몸부림친 나라였다. 예센의 1913년 조선 여행기에서 따온 '우아한 루저의 나라'라는 표현에는 대한제국의 몰락과 영리하면서도 순박한 조선인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어 있다. 고 교수는 "예센의 눈에 비친 우아한 루저의 원형은 조선 선비로, 상황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품위 있는 게으름뱅이로 그리고 있다"며 "이들은 조선인의 정체성을 온몸으로 껴안고 살아가는 제국주의의 희생양이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독일의 다양한 신문 자료에서 대한제국을 용기 있는 전환점으로 바라본 평가를 찾을 수 있었다. 배를리너-폴크스 짜이퉁 1907년 7월 27일 자 기사 '대한제국 사절단의 항변'이 대표적 예다. 고종 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대회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하면서 "나를 돌아보지 마라. 나는 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삶은 이 나라에 속한다"고 비장한 마음을 보였다는 내용이 실렸다. 고 교수는 "고종 황제가 나라를 위해 죽음까지 불사한 용기 있는 황제였음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며 "이런 노력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묻혀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예센은 화혼양재(和魂洋才)를 기치로 자신의 정체성을 서양화시키는 일본인의 모습을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정체성을 한번도 버린 적이 없음을 바로 이 독일인의 시선을 통해 확인할 수 있죠. 오늘날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세계를 휩쓰는 K콘텐츠 열풍의 저변에 바로 이런 정신이 깔린 게 아닐까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