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과 충돌, 지역개발 장애물 반대 여론
이번 산불선 진화 헬기 전초기지로 활용
인근 원자력발전소와의 충돌 사고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폐쇄 요구가 끊이지 않던 경북 울진군 죽변면의 비상활주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이 비상활주로가 이번 울진 산불에서 헬기 이착륙장으로 이용되며 '비상용 시설'로서 그 몫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동해안 지역 대형 산불이 가능성이 높아지는 점을 감안해, 비상활주로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미운오리 취급받던 비상활주로
15일 울진군에 따르면 죽변 비상활주로는 1978년 강릉비행장과 포항공항 사이의 중간 지점인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 건설됐다. 주기장 2만6,998㎡에 더해, 길이 2.8㎞ 폭 47.5m의 활주로(면적 7만8,330㎡)를 갖추고 있다. 이 비상활주로는 적국의 공격에 주변 공항과 공군기지 등이 손상을 입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지어졌다. 직선으로 5㎞ 가량 떨어진 한울원전을 보호하기 위한 전시용 군사시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규모 비상활주로가 지역 개발의 장애물로 작용하면서, 활주로 인근 죽변면 주민들은 비상활주로의 폐쇄를 요구해 왔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및 보호법에 따라 활주로 주변은 개발행위가 제한돼 개인 재산권 침해가 불가피한 탓이다.
한울원전이 가동된 2000년대 이후로는 안전을 이유로 활주로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보태졌다. 활주로와 원전이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 항공기 운행중 사고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였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원전 주변 8㎞ 이내 군사비행장을 설치할 수 없고, 국가공역위원회도 원전 반경 18.5㎞안까지를 비행금지구역 및 위험구역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 죽변 비상활주로는 한울원전과 5㎞, 시운전 중인 신한울원전 1·2호기와는 불과 3㎞ 떨어져있다. 건설부지가 확정돼 있는 신한울원전 3·4호기와는 또 더 가깝다.
산불진압 전초기지로 분위기 반전
불과 5개월 전만해도 울진군의회까지 적극 나서 비상활주로 폐쇄를 주장할 정도로 여론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산불로 비상활주로에 대한 여론이 꽤나 달라졌다. 9일간 이어진 초대형 산불 진압 과정에 하루 50~80여대의 헬기가 투입될 때, 화재 현장 가운데에 위치한 활주로가 매우 요긴하게 활용된 덕이다. 헬기 수십 대가 동시에 물과 기름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탁트인 넓은 공간이어서 진화 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었다.
특히 기후 변화 탓에 앞으로 동해안에 초대형 산불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비상활주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조심스레 흘러 나오고 있다. 주민 전모(68)씨는 “훈련 때 비행 소음으로 시끄럽기도 해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애물단지라 생각했는데 이번 산불을 겪고 마음이 바뀌었다”며 “원전 안까지 불이 붙는 걸 보니 원전 안전을 위해서라도 활주로가 꼭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폐쇄 주장도 여전하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15일 오전 울진 산불 피해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신한울원전 3·4호기 건설 신속 재개와 함께 활주로 폐쇄를 요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울진군의원도 “산불 때 덕을 보긴 했지만 산림이 다 소실돼 이제 불 나도 탈 나무가 없다”며 “대규모 개발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활주로를) 없애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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