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요양원 학대 피해자였다..."난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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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요양원 학대 피해자였다..."난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입력
2022.03.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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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좌승주 신경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 집에는 핸드메이드 수세미가 하나 있다. 오래됐지만 아직도 거품이 잘 나고 잘 닦이는 좋은 수세미다.

코로나가 오기 전의 일이다. 허리 통증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고령의 할머니 한 분이 입원을 하셨다. 작은 체구에 굽어진 등, 세월이 깊게 새겨진 주름과 백발. 주위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그런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대화를 나눠 보니 말씀 하나하나가 점잖고 교양이 넘쳐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치게 되는 그런 분이었다.

주위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 있던 할머니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표정과 따뜻한 배려로 의료진을 대했다. 고령의 치매환자가 많은 신경과 병동에서 항상 차분한 말투와 인자한 웃음으로 의료진을 맞이하는 할머니의 존재는 병동의 분위기까지 밝게 바꿔 놓았다. 병실에 들어가면 항상 침상에 바른 자세로 앉아 뜨개질로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는데 그 풍경에서 일종의 평온함마저 느껴졌다.

어느 날 평소처럼 회진을 마치고 병실을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주저하면서 비닐봉지 하나를 건넸다.

"참… 과장님은 이런 거 안 쓰시죠?"

안을 보니 알록달록한 색깔의 수세미 몇 개가 들어 있었다.

"아이고… 어르신 항상 뭐 만들고 계시던데 그게 수세미였구나…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할머니의 정성을 봐서 받아 오긴 했지만 사실 내가 보기에 마트에 파는 흔한 수세미와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아내에게 수세미를 건넸더니 아내는 감탄을 했다.

"와, 핸드메이드 수세미네! 직접 만드신 거야? 엄청 정성 들여서 만드셨나 보다. 코하나 빠진 데가 없네."

아내의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니 수세미가 달라 보였다. 어긋난 곳 하나 없이 한 땀 한 땀이 자로 잰 듯 반듯했다. 나중에 간호사에게 들어보니 내게 주려고 특별히 잘된 것만 골라 담아 두셨다고 한다. 그 정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스스로가 부끄러워 그 뒤론 회진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가 직접 떠 주신 수세미.

몇 개월 뒤, 다행히 경과가 좋아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며칠 후, 난 평소처럼 요양원을 방문했다. 할머니와 짧은 안부를 주고받은 뒤 돌아서려는 찰나,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저… 과장님…"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네, 어르신. 말씀하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 허리가 다시 아프신가요?"
"아니… 허리는 괜찮아요. 그런데…"

점잖고 차분한 평소와는 다르게,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불편한 게 있지만 차마 말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이것저것 여쭤봤지만 끝내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봐도, 아직 바뀐 환경에 적응을 못 해 좀 불안해하시는 것 같다는 이야기밖에는 들을 수 없었다. 무언가 석연치 않은 마음이었지만, 통증도 많이 좋아졌고 생체징후도 안정적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보호자를 통해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에 의한 학대사건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피해자였으며, 그로 인해 요양시설을 옮겼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 할머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던 것이었다.

기억을 돌이켜보니, 그때 학대 당사자가 같은 공간에 있어서 말을 꺼내지 못 하셨던 것 같았다. 내 손을 잡고 뭔가를 말하려고 했던 할머니의 표정이 떠오르면서 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평소 작은 불편함도 내색하지 않았던 분이 분명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했었는데 왜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일까.

혼자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할머니의 새 요양시설을 찾아갔다. 풍경이 좋은 시골마을에 위치한 작은 요양원이었다. 죄책감과 자괴감이 뒤섞인 착잡한 마음으로 시골길을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난 할머니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면회를 신청하고 할머니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속으로 많은 말들을 준비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나와 예전처럼 환하게 웃으시는 그 표정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미안함에 말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질 것 같았다.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안부를 나눈 뒤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 결국 나는 해야 할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소의(小醫)는 병을 고치고, 중의(中醫)는 사람을 고치고, 대의(大醫)는 나라를 고친다고 했다. 환자들을 대하면서 병과 증상에만 집중하다 보니 나에게 어느새 '환자'는 없어지고 '병'만 남아 버렸나 보다. 내가 '소의'였음을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그 핸드메이드 수세미가 있다. 색이 좀 바랬어도 여전히 거품이 잘 난다. 그 수세미를 볼 때면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날의 복잡한 감정이 떠오른다.

제주의료원 신경과장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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