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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 의대 새내기 최혜정 "시각장애 아버지 고쳐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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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 의대 새내기 최혜정 "시각장애 아버지 고쳐드리고 싶어요"

입력
2022.03.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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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반변성으로 시신경 손상, 시각장애인 된 어버지
6시에 일어나 공부 시작, 하교 후 빨래 등 집안일도
"주변 도움 많이 받아... 도움 주는 사람 되고 싶어"


최혜정씨는 공부에 집안일까지 하느라 하루 3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최씨는 "시각장애인이 되신 아버지를 고쳐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릴 적부터 의대 진학을 꿈꿨다"고 말했다. 박성현 기자

최혜정씨는 공부에 집안일까지 하느라 하루 3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최씨는 "시각장애인이 되신 아버지를 고쳐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릴 적부터 의대 진학을 꿈꿨다"고 말했다. 박성현 기자


"세상에 이런 일이!"

지난 1월, 최혜정(19)씨가 꿈에 그리던 경상대 의과대학 합격증을 받아든 날, 소식을 접한 아버지가 뱉은 첫 마디였다. 최씨는 아버지의 품에서 한참을 글썽였고, 오빠는 폴짝폴짝 뛰면서 기쁨의 함성을 질러댔다. 최씨는 "처음 합격발표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며 "얼른 훌륭한 안과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병을 고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학업과 집안일 병행하다 시험 망친 적도

최씨의 아버지는 최씨가 태어날 즈음, 황반변성으로 인한 시신경 손상으로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아버지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최씨는 어릴 적부터 막연히 '의사가 되어 아버지를 낫게 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의대 진학이 목표가 되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공부에 몰입할 만한 여건이 아니었다. 최씨가 다섯 살일 때 이혼한 어머니는 그 뒤로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다섯 살 많은 오빠는 지체장애인이다. 살림을 도맡아주시던 할머니마저 건강악화로 인해 요양원으로 갔다. 최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고3 때도 공부와 집안일을 함께하다 보니 체력 관리가 제일 힘들었다. 학교 시험을 치다가 구토를 하는 바람에 제시간에 문제를 다 못 푼 적도 있었다.

최씨의 하루는 오전 6시부터 시작됐다. 맑은 정신으로 일어나 비문학 문제를 푼 뒤 아버지와 오빠가 먹을 아침을 챙겨둔 뒤 학교로 향했다. 방과 후엔 스터디카페로 가서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나 빨래 등 밀린 일들을 마치고 나면 시간은 3시에 가까워졌다. 잠자리에 몸을 눕힐 수 있는 시간은 하루 3시간이 고작이었다.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간절히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또 버텼어요."

"생기부 위해 교내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했어요"

의대 진학을 위해서는 1학년 때부터 내신점수와 생활기록부 관리가 중요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했다. 특히 최씨는 생활기록부 관리에 애를 먹었다.

"생활기록부에는 제가 의대에 왜 가야 하는지, 가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열정을 담아내야 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물량공세였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도 바빴지만 교내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 참가했다. 무엇이든지 성과를 올리면 작은 도움이라도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여러 대회 중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것은 과학탐구활동이었다. 그가 의대에 진학해서 연구하고 싶었던 황반변성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관련 논문을 찾고 치료법을 연구해 보다 보니 점차 꿈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려운 내용도 많았지만 학교 선생님들과 먼저 의대를 진학한 학교 선배들의 도움 덕분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실장을 맡기도 했지만, 살뜰하게 친구들을 챙기는 성격 덕분에 반에서 '엄마'라는 별명도 얻었다. 공부와 교내 활동, 교우 관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군데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힘든 시기 주변 도움 많이 받아...이제는 돕는 사람 되고 싶어

잊을 수 없는 도움의 손길이 있다. 수학 성적이 떨어져 고전할 때 학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준 손길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방과후수업 등을 활용해 가까스로 성적을 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형편상 학원을 다닐 수가 없었다. 그때 달서구신당종합사회복지관에서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소정의 장학금을 모금해서 전달했다. 그 덕에 학원을 갈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복지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곳에서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취미활동이나 진로상담도 해줬죠. 저한테는 또 다른 보호자나 다름없었어요. 이런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의대 진학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가장 큰 힘이 됐던 건 가족이었다. 입시를 준비하며 예민해질 때가 많았지만 아버지가 든든하게 곁을 지켜준 덕분에 어려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앞이 보이지 않으셨지만 저의 모든 모습을 훤하게 지켜보고 계신 것 같았어요.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죠."

의대 진학으로 모든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학교가 다른 지역에 있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아버지와 오빠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최씨는 "아직 뾰족한 수가 생긴 건 아니지만 큰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의대 공부도 만만찮을 것이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많지만 큰 고비는 넘긴 만큼 이제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는 의대에 가지도,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제는 제가 받은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더 열심히 공부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박성현 대구한국일보 기자 star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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