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먹으면 낙태, 탑을 먹으면 잉태라는 희한한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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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을 먹으면 낙태, 탑을 먹으면 잉태라는 희한한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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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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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현
자현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국립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 ⓒ여실화(서애자)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최고의 성군인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아들인 경덕왕이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손자인 혜공왕이 완성한 종이다. 성덕왕은 신라 왕 중에서 불교와 가장 인연이 깊다.

성덕왕은 왕위 계승과정에서 형인 효소왕에게 밀려나 평창의 문수보살 성지인 오대산으로 숨는다. 그런데 은거 도중 부처님과 보살님을 친견하는 이적을 경험하고, 상황 반전을 맞아 귀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 이로 인해 성덕왕은 즉위 4년(705)에 오대산을 찾아 상원사를 창건한다.

또 신라인으로서 당나라로 건너가 최고의 고승이 되는 구화산의 김지장(혹 김교각)과, 당현종에게 크게 존중받은 사천성의 무상 등이 모두 성덕왕의 아들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만큼 성덕왕의 불교적 위상은 압도적이다.

그런데 성덕대왕신종에는 잔인한 전설이 다수 서려 있다. '에밀레종'으로 익숙한 이 종의 주조에 어린아이가 들어가 있다는 전설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주물 과정에 사람이 들어가 신령한 물건이 된다는 설정은 중국 춘추시대의 명검(名劍)인 '간장'과 '막야검'에서도 확인된다. 즉 '전설 돌려막기'인 셈이다. 더구나 에밀레종에 아이가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에 처음 등장한다. 또 고온의 주물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것이 수분이며, 인체의 대부분이 물이라는 점은 이야기의 비합리성을 드러낸다.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의 공양 비천상의 행향로 모습. 예리한 걸로 긁힌 자취가 역력하다. ⓒ여실화(서애자)

전설의 두 번째는 이 종을 갈아 먹으면 낙태한다 이야기다. 실제로 종의 비천상 쪽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제법 깊이 파낸 상흔이 10여 줄 있다.

낙태 전설은 에밀레종의 아이 죽음 이야기가 확대돼 낙태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아이의 죽음=낙태'의 연결인 셈이다. 아이가 들어간 종에 낙태까지, 실로 섬뜩한 괴담이 아닐 수 없다.

아이 죽음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낙태 역시 조선이라는 농경사회에서는 흔할 일이 아니다. 즉, 성적 자유도가 커진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 낙태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낙태 이야기는 아이 설화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역시 오래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메인 유물인 경천사지10층석탑에는 석탑을 갈아 먹으면, 아들을 잉태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문에 손이 닿는 탑의 아래쪽은 조각이 모두 뭉개져 버렸다. 즉 잉태를 위해서는 탑을 갈아 먹고, 낙태를 하려면 종을 먹어야 하는 진기한 시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더구나 두 유물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대 박물관의 메인 유물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의 용뉴와 지름 8㎝의 철봉 ⓒ여실화(서애자)

마지막은 종의 고리에 얽힌 포항제철, 즉 포스코 이야기다. 1975년 종이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질 때, 종을 거는 8㎝의 종고리가 문제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직경 8㎝의 오래된 쇠막대로 종의 무게인 18.9톤을 버틴다는 게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해서 당시 포항제철에 의뢰해 새로 제작했다. 그런데 이 봉이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휘어지며, 예전 것을 도색해 사용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는 1975년의 이야기로, 아직 농익은 것은 아니다. 전설이 되기 위해 숟가락을 얹은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성덕대왕신종에는 세 가지 전설이 있지만, 딱히 전설이라고 할 정도로 오래된 것은 없다. 즉, 이 이야기들을 통해 전설보다는 오히려 전설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확인해 보는 것이 흥미롭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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