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모든 버스에 시설 설치" 원심 파기환송
원고들 "장애인의 동등한 이동권 제한" 반발
버스회사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을 위한 승하차 설비를 마련할 때 재정 부담 등 회사 사정이 고려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회사가 '즉시' '모든' 버스에 시설 설치를 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8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장애인 김모씨 등 5명이 명성운수와 금호고속, 서울시와 경기도, 국토교통부 장관, 국가 등을 상대로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휠체어 승강 설비를 설치하라"고 제기한 차별구제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김씨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은 2014년 4월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확보를 위해 시외버스, 고속버스 등에 저상버스가 도입돼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원고들은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할 때마다 휠체어 승하차 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어왔다며 금호고속과 명성운수에 시설 마련을, 경기도와 서울시엔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요구했다.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1심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버스회사들이 승강 설비 마련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버스회사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명령한 첫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국가, 서울시, 경기도, 금호고속, 명성운수에 원고 2명에게 각 500만 원을 배상하라고도 명령했다. 항소심은 원심 판결을 일부 인용하면서 지자체 등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차별의 고의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유예기간 없이 '즉시' '모든' 버스에 시설을 설치하라고 명령한 원심 판결은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버스회사들의 재무 사정을 고려해 설비 대상 버스와 의무 이행시기를 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설치하되, 회사 재정 상태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씨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성명을 내고 "장애인 이동권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정할 것을 포기한 판단"이라고 판결에 반발했다. 이들은 "지난 8년간 정부와 교통사업자들의 장애인 시외이동권 확보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이들이 구체적 계획을 세워 이행하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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