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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의 손가락이 온전하려면

입력
2022.03.0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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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의 전격사퇴, ‘식언정치’의 전형
인위적 단일화로 표심 왜곡 우려
“연내 정치개혁” 반드시 이행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안철수(오른쪽) 국민의당 대표가 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와 자신의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던 중 윤 후보를 바라보고 있다. 오대근 기자

안철수(오른쪽) 국민의당 대표가 3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와 자신의 후보직 사퇴를 선언하던 중 윤 후보를 바라보고 있다. 오대근 기자

‘예상대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선 문턱에서 또 한 번 주저앉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앞세우기 두어 시간 전까지도 전국에 생중계된 TV토론 내내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했던 그다. “상대방을 떨어뜨리기 위해 마음에 안 드는 무능한 후보를 뽑아 당선되면 1년만 지나도 ‘그 사람 뽑은 손가락 자르고 싶다’고 할 것”이라며 윤 후보를 디스했던 그다. 심지어 완주 의지를 강조하느라 고인(故人)의 유지까지 언급했던 그다.

정치 입문 11년 차인 안 대표의 이번 4번째 중도사퇴는 사실 충분히 예견됐다. 그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연이어 후보직을 사퇴했고,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전’ 성격이 강한 국회의원직 도전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완주가 5년 전 대선 레이스였다. 순전히 경험칙상으로만 보면 ‘큰 선거’에서 그가 마지막까지 국민의 선택지에 남아 있을 확률은 극히 낮았던 셈이다.

그래도 ‘안철수’ 이름 석 자의 무게를 감안하면 다소 실망스럽기는 하다. 무엇보다 그의 지향과 의중을 해석하고 가늠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게 ‘재’확인됐다. 윤 후보에 대한 숱한 비판ㆍ비난과 전격적인 지지 선언, 국민의힘과의 합당과 다당제 소신 등은 식언(食言)에 모순투성이다. 요 며칠 새 윤 후보의 당선이 ‘적폐 교대’가 아닌 ‘좋은 정권교체’일 거라 확신하게 된 근거를 도통 모르겠다. 그간의 종잡을 수 없는 정치행보를 모르지 않지만, 역대 최고 비호감 대선이다 보니 ‘혹시나’ 하고 눈길을 줬던 이들로선 ‘역시나’ 하고 탄식할 수밖에.

그간 진영을 넘나들며 창당ㆍ분당ㆍ합당ㆍ탈당을 반복했던 어지러운 행보의 종착역이 탄핵 후에도 쇄신을 철저히 외면해온 거대 보수정당이란 점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엔 최소한 ‘새정치’에 대한 희망고문조차 없이 본인의 훗날부터 도모한 염치없음도 읽힌다. 그는 윤 후보 곁에 서서 정권교체를 위한 ‘개인적인 손해’를 운운했지만, 의도적으로 “국회의원으로 입법활동을 했지만 이를 실행할 행정업무를 할 기회는 없었다”며 입각과 차기를 보장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안 대표의 이번 선택은 최종적으로 9일 투표 결과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것이다. 그의 선택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이해관계와 함께 대선 결과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인위적’ 단일화가 이번에도 민의를 직간접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마무리된 재외국민투표 중 ‘안철수표’는 아예 사표가 됐다. ‘오로지 안철수’이던 유권자들로선 선택의 공백에 직면했고, 자칫 기권으로 내몰리거나 무효표 투척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윤석열 절대 No’이던 유권자들은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게 됐다. 현실적으로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일부 지지층에게도 불필요한 변수가 생겼다.

역설적이게도 안 대표의 낙마는 국회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역할과 소임을 일깨운다.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반영되고 유권자의 표심이 있는 그대로 표출되도록 하겠다는, 이재명 후보의 당락과 무관하게 실천하겠다던 정치개혁 약속 말이다.

설령 안 대표를 중립지대에 묶어 놓겠다던 목표가 틀어졌다 한들 대국민 약속의 무게감만 할까. 다급함 때문일지라도 윤 후보 역시 안 대표의 다당제 소신을 수용하지 않았나. 게다가 국민의힘을 실용ㆍ중도 정당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안 대표의 기염은 누가 봐도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지 않나. 최소한 대선 결선투표제라도 도입해야 누구라도 유권자 손가락을 걱정하는 일은 없지 않겠나. 간절한 호소이자 엄중한 경고다.

양정대 에디터 겸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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