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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37년 만에 회사로 돌아간 여성

입력
2022.03.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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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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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제2의 전태일은 여자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中 청계피복노조 노동자들

Her View : 여성의 관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지난달 25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열린 해직노동자 김진숙 명예 복직 및 퇴직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지난달 25일 부산 영도구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열린 해직노동자 김진숙 명예 복직 및 퇴직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김진숙의 허스토리
(2022년 3월 3일자)

안녕하세요, 독자님. 허스토리입니다. 오늘은 37년 만에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간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달 25일, 명예복직을 위해 마지막 출근길에 나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입니다.

김 지도위원은 해고노동자입니다. 1981년 HJ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국내 1호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습니다. 1986년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대공분실로 끌려갔습니다. 경찰 고문을 받는 동안 무단결근을 했다는 이유로 사측은 그를 징계 해고했습니다. 이후 회사의 주인이 세 번 바뀌는 37년동안, 그는 부단히 회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지난한 법적 소송과 관계기관의 중재 요청, 그리고 복직투쟁....

2003년 노조 동지들의 잇단 사망 등 그간 참 많은 동료를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동료 해고노동자들은 복직이 결정되었습니다. 단 한 사람, 김진숙만 빼고 말입니다. 이미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의 복직을 경총과 전경련 등 재계에서 반대한다는 이유였습니다.

20대 용접공은 어느덧 환갑을 지나 머리가 새하얗게 센 노년이 되었습니다. 60세 정년을 하루 앞둔 2020년 12월 30일부터 그는 부산 호포역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행진을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3명으로 조촐하게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길목마다 합류해 청와대에 도착한 2021년 2월 7일에는 어느덧 700여 명이 함께 했습니다. 그가 걸어간 길마다 수많은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걸었습니다. 1980년대 해고자들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해고된 아시아나KO, 코레일네트웍스, LG트윈타워까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을 그 오랜 기간 계속 두드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는 37년 노동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먼저 간 동지들을 꼽았습니다. 또 사회 각계의 참 많은 이들이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함께 희망했어요. 2020년 말부터 시민들은 '리멤버 희망버스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청와대 앞 단식 농성을 이어왔어요.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생전 마지막 한 마디도 "김진숙 힘내라"였죠.

그 많은 동료들이, 김 지도위원의 출근길에 함께 했습니다. "힘내라"던 백 소장은 사진으로나마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37년 만의 출근이자 마지막 퇴근길이 된 이날 김 지도위원의 연설 일부를 옮기며 오늘 허스토리를 마감합니다.


"이 낡은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입고 끌려갔던 옷,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 위에서 마지막까지 입었던 작업복, 재규형이 도크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그 작업복, 강서의 시신에 입혀졌던 그 작업복은,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이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노조위원장마다 감옥으로 끌려가거나 해고되거나 죽었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이후 그토록 복직을 기다리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복수노조 만들어 서른네 살 최강서를 죽였던 한진중공업.

새로운 경영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꿨던 동지들의 상여를 매고 영로 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 주십시오.

정치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여온 기업주들이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어제 동료가 죽은 현장에 오늘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들 그들이 목숨 걸고 외치는 말을 들어야 차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동일방직, 청계피복, YHN 수많은 70~80년대 해고노동자들, 삼화고무를 비롯한 부산지역 수많은 신발공장 노동자들, 30~40년을 해고자로 위장취업자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살아온 그 억울한 이름들을 이제나마 불러주십시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맺힌 한을 풀어주십시오. 아사히, 아시아나KO, 건보공단, 도로공사 비정규직들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씻어주십시오. (...)"


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미싱타는 여자들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소녀들은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노동교실로 향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에 어린 여공이 있었다는 것 아시나요. 평화시장 재봉사로 일하던 그는 여공들이 열악한 처우로 일하다 폐렴을 얻어 강제 해고되는 것을 보고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자신도 힘들기 그지 없지만, 차비를 아껴 여공들이 먹을 풀빵을 사주며 세심하게 살핍니다.
그런데 1970년대 '여공들'. 그저 연약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미성숙한 존재였을까요.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70년대 청계피복노조에 몸담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치열했던 날을 기록합니다. 흔히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은 '지식인' '대학생'이 주도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리던 어린 여공들을 운동의 중심으로 과감하게 소환합니다. 여공들의 입을 통해 되살아난 투쟁의 기억을 듣다 보면, 남성들만 기억되는 노동 운동의 중심에 여성 노동자가 당당히 존재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제2의 전태일은 여자였다"고요.
역사의 모든 순간마다 여성이 있었습니다. 다만 세상이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죠. 지금이라도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허스토리'를 복원하는 작업이 각계에서 활발해진 것은 다행입니다. 한국일보는 2020년,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전태일 기념관 측이 최초로 공개한 '노조하는 여공들의 삶' 사진을 보도(https://url.kr/56xdy8)한 바 있는데요. 계속해서 이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허스토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본 뉴스레터는 2022년 3월 3일 출고된 지난 메일입니다. 기사 출고 시점과 일부 변동 사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뉴스레터 '허스토리'를 즉시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한국일보에서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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