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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전쟁이라는 이름의 그림자놀이

입력
2022.03.0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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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선거 벽보. 뉴스1, ⓒ게티이미지뱅크

제20대 대통령선거 벽보. 뉴스1,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볼 줄 모르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인 상황을 흔히 보게 된다. 대선을 앞둔 요즘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와 거리에서 보게 되는 모습들은 흡사 본질은 감추어진 채 스크린에 투영된 실루엣만으로 줄거리를 이해해야 하는 그림자놀이 같다.

상대방이 정의롭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일수록 부정한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고, 도덕적 우위와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추문에 휩싸이기 쉽다. 자신은 다른 어떤 이보다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인 것처럼 구는 사람일수록 자기도 모르게 탐욕에 눈이 멀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내가 아는 내가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내가 '알고 있는 나'를 강하게 믿을수록, 무의식적으로는 어두운 자기의 일면을 다른 누군가에게 덮어씌우고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인정하지 않고 보기 싫어 감추어 온 나의 '부분'이 '등잔 밑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다른 이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융은 이 '그림자'를 가리켜 의식 바로 아래 숨겨진 '무의식적 측면의 자기'로서, 우리의 '열등한 인격'이라 하였다. 드러내지 않고 감추었기에 의식될 기회를 잃고 미분화된 채로 남아 있는 원시적 상태의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의식되지 못한 자기의 일부인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서 보게 될 때, '왠지 모르게' 밉고, '괜히' 싫고, '공연히' 화가 나는 불쾌한 감정을 강하게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반응은 상대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그에게서 보기 때문이다. 감정에 휩싸여 상대방을 비방하고 폄훼하는 사이, 기껏 잘 감춰왔던 열등한 내 인격의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거리의 선거운동과 개인적인 말싸움에 불과한 정책토론회를 보면, 그림자놀이가 따로 없구나 싶다.

신념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 신념을 타인을 향해 강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오류에 빠질 위험이 크다. 대의도 명분도 없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전쟁 도발은 푸틴이라는 독재권력자의 자기 과신과 교만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아집과 독선에 가득 차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인 사람은 상대적으로 집단적 결속의 희생양이 되는 값을 치르게 마련인데, 최근 유럽국가들이 전례 없는 유대와 결속을 다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 시간으로 3일 새벽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는 25년 만에 긴급특별총회가 열렸고, 140개국 이상의 회원국이 뜻을 함께하였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이제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아니라, 전 세계와의 싸움이 된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일으킨 재앙이 곧 러시아에 재앙으로 변모되는 과정을 전 세계인이 보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비단 국가 간의 외교 관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대선을 앞둔 작금의 우리 정당정치 현실에도 이 같은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나를 높이 세우지 않아야 그림자가 짙어지지 않는다는 지혜를 정치적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미몽일까.


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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