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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영통신의 오보

입력
2022.03.02 18:00
수정
2022.03.02 18:40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우크라이나 민방위대원들이 지난달 27일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민방위대원들이 지난달 27일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 키이우=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6일 오전 8시쯤 러시아 국영통신사 RIA노보스티 인터넷 사이트에 '러시아와 새로운 세계의 도래'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되었다고 한다. 첫 문장이 '우리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다'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장악을 사실로 전제하면서 그래야만 하는 이유로 '러시아의 일체성 회복'을 들었다. 기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대 저지나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편입보다 '러시아가 역사적 기반인 키예프(키이우)를 잃어버린 굴욕을 푸는 것'이 우크라이나 침략의 근본 목적인 듯 설명하고 있다.

□ 푸틴의 비뚤어진 과거 회귀적 역사인식을 반영하는 이 기사는 그러나 게재 직후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키이우 함락과 젤렌스키 정권의 전복을 기정사실화한 것이 당시 전황과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완전 장악에 맞춰 미리 써놓은 기사를 실수로 내보냈다가 황급히 삭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 푸틴은 이틀 정도면 키이우를 함락시킬 것으로 봤을 게다. 미 정보기관조차 러시아군의 이틀 내 키이우 장악이 가능하다고 했고, 외신도 러시아가 침략하자마자 키이우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키이우는 러시아 손에 떨어지지 않았다. 동부 주요 도시 하리키우, 마리우폴의 방어선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전력은 절대 열세지만 대통령을 비롯해 우크라이나군이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싸우고 있고, 이를 거드는 시민도 적지 않다.

□ 전례 없는 국제 연대도 한몫한다.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등 중립국까지 일제히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삭제된 RIA노보스티 기사는 시종일관 '앵글로색슨'에 대한 적의를 감추지 않으며, 프랑스나 특히 독일은 이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유럽 갈라치기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얕잡아본 것처럼 이 또한 러시아의 오산이다. 독일은 분쟁지역 무기수출 금지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대량의 무기 공급을 선언했다. 푸틴이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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