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력" 강조하며 "日, 역사 앞 겸허해야"
"의지 있다면 한반도 평화 가능" 원칙 재확인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미래 세대를 위한 현 세대의 책무"라고 강조하는 동시에 일본 정부를 향해 "역사를 직시하고 역사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사 해결과 미래지향적 관계 정립을 분리 대응한다'는 '대일(對日) 투트랙'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지난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모든 분야에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이웃"이라 부르며 관계 개선을 적극 촉구했던 것과 달리, 문 대통령은 올해 "가까운 이웃"이란 표현으로 다소 거리를 뒀다.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서는 "평화를 지속시키기 위한 대화의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는 원칙을 거듭 밝혔다. 문 대통령은 "평화"를 14번 호명했다.
"日, 역사 직시하고 겸허해야"… 메시지 '수위 조절'
문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린 제103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우리 선조들은 3·1독립운동 선언에서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을 극복하고 동양의 평화를 위해 함께하자고 일본에 제안했다"며 "지금 우리의 마음도 같다.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한때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딛고 미래를 향해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한때 불행했던 과거'로 인해 때때로 덧나는 이웃 나라 국민의 상처를 공감할 수 있을 때 일본은 신뢰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한일관계를 넘어서, 일본이 선진국으로서 리더십을 가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사는 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일본에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일본에 해야 할 말은 하면서도, 차기 정부에 지나치게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메시지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한 구체적 언급 대신 "한때 불행했던 과거"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일본의 반성을 직접적으로 촉구하기보다는 '선진국 리더십'과 연관지어 일본의 각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엔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잊지 못하는 법"이라며 보다 선명한 메시지를 냈다.
3∙1절 기념사의 일본 관련 언급은 지난해 1,300자에서 400여 자로 대폭 줄었다. 정권 말이라 구체적인 제안 또는 새로운 비전을 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둘 것"이라고 한 것도 지난해 "언제든 일본 정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다"는 표현과 다소 온도 차가 난다.
"평화 노력 계속돼야…" 한반도 평화 의지 놓지 않은 文
한반도 평화 의지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대화와 외교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며 "평화를 통해 민족의 생존을 지키고,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평화 속에서 번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더 강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한반도 평화"라고도 했다. 다만 메시지는 원론적이었다. 임기 중 남북관계 진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힘으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자국중심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신냉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3∙1 독립운동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이 열린 임정기념관은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건립을 공약한 곳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건립을 약속했고, 그해 중국 방문 때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선열들께 건립을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 함께 한복을 입고 기념식에 참석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