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양 현대 이어 월계 동신 재건축도 수주
건설업계 "손해 감수하겠다는 것"
행정처분 앞서 수주 '올인'에 도덕성 논란도
광주 서구 신축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로 벼랑 끝에 몰린 HDC현대산업개발이 배수의 진을 치고 재건축 사업을 연달아 따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5일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에 이어 서울 월계동 동신아파트 수주전에서도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승전고를 울렸다.
건설업계는 광주 사고에 따른 행정처분에 앞서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손해 보고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사고 수습보다 사업 수주에 매진하는 행보에 "그룹 오너가 약속했던 책임지는 모습이 아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은 전날 동신아파트 재건축조합의 시공사 선정총회에서 총 800표 중 739표(득표율 92.4%)를 받아 경쟁사 코오롱글로벌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한 조합원은 "광주에서 대형 사고를 일으켜 부정적 인식이 컸지만 시공능력평가 10위 안에 들고 사고 이후 더욱 튼튼하게 지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고 했다.
완승 배경에는 파격적인 제안이 있었다. 현대산업개발은 △사업촉진비 4,500억 원(가구당 5억 원) 지원 △광운대역세권 브리지 연결 △미분양 시 대물변제 100% 등을 내걸었다. 관양동 현대아파트 수주전에서도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한 이주비 2조 원 조달 △사업추진비 가구당 7,000만 원 지급 △3.3㎡(1평)당 4,800만 원 기준 일반분양가 100% 반영 등을 제시했다.
"현대산업개발과 경쟁 붙으면 차라리 포기, 손해 보고 할 수 없어"
업계는 현대산업개발처럼 재건축 사업을 하면 절대로 남는 장사를 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돈을 벌자고 하는 공사인데, 저런 제안은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것"이라며 "수주 경쟁이 붙는다면 굳이 필요성을 못 느낀다. 손해 보고 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비사업은 일반 분양가격이 핵심인데, 보수적인 접근은 없고 시세와 크게 차이 나는 장밋빛 분양가를 제시했다"며 "가령 부동산 경기가 꺾여 평당 5,000만 원을 약속한 분양가가 분양 시점에 3,500만 원으로 나온다면 제안 내용은 공수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지적에 현대산업개발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이익이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안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직 광주 사고 피해 수습과 붕괴 원인 규명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수주전에 '올인'하는 듯한 현대산업개발의 도덕성을 꼬집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그룹 오너가 '책임지는 자세를 갖겠다'고 했으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먼저"라며 "사고 조사가 진행 중이니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는 식으로 비쳐진다"고 꼬집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광주에서 큰 사고를 낸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잘못했다"며 "앞으로도 피해보상 등 사고 수습에 책임을 다하며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행정처분 오래 걸리는 제도적 허점 속에 수주 매진
아무리 큰 사고를 내도 제재까지 오래 걸리는 현 제도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건설산업기본법 제14조는 영업정지나 등록말소 전 도급 계약을 체결했거나 착공에 들어간 경우 계속 시공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광주 학동 붕괴 참사와 올해 외벽 붕괴 사고를 냈지만 아직 행정처분을 받지 않아 현재 따낸 사업은 정상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김 국장은 "서울시가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청문 등 행정절차가 필요하다는 제도 핑계를 대고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대산업개발은 사고 후 두 차례 수주 성공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기존 사업지에서 '아이파크'를 빼달라는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광주 북구 운암3단지 재건축 사업은 조합의 반발이 계속돼 물러나기로 했다. 경기 광명11 재개발 구역도 시공 참여와 아이파크 브랜드 사용을 제한하는 공문을 현대산업개발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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