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 장비 실은 소방펌프차 '펌뷸런스'
서대문소방서 4인조, 심폐소생술로 환자 구조
확진자 이송으로 구급차 부족할 때 제 몫 톡톡
짧게 울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9번, 그리고 이어진 급박한 지령. 지난 1월 12일 오후 9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대로변에 심정지 환자가 쓰러져 있다는 119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서대문소방서 구급차(앰뷸런스) 7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이송 출동 등으로 전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자동심장충격기(AED)와 거즈 등 응급구조 장비를 실은 소방펌프차 '펌뷸런스'가 출동할 타이밍이었다.
이근세 소방위와 장세진 소방장을 포함한 펌뷸런스 대원 4명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한 보호복 5종까지 착용하고도 펌뷸런스는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영하 11도의 겨울밤 추위에도 시민들이 쓰러진 50대 남성에게 패딩을 덮어주고 팔다리를 주무르던 상황이었다.
대원들이 펌뷸런스에 구비된 AED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지 3분 20초 만에 남성의 맥박이 돌아왔다. 때맞춰 도착한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된 남성은 현재 건강을 상당히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펌뷸런스가 코로나19로 인한 응급구조 공백을 메운 덕분에 골든타임을 지켜낼 수 있었다.
"30년 근무 만에 처음… 해야 할 일 했을 뿐"
소방대원이면서 구급 업무까지 도맡은 펌뷸런스 대원들의 활약은 시민들의 자발적 구조 활동까지 더해, 언론에 알려져 호평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서대문소방서에서 만난 대원들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 소방위는 "심정지 환자를 구조한 건 소방관 경력 30년 만에 처음이었는데 대원들이 잘해준 덕분에 무사히 마쳤다"며 "예전에 휴무도 없이 일하던 와중에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땄던 게 사람을 살리는 나비효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펌뷸런스엔 2급 이상 응급구조사 자격을 갖춘 소방대원이 1명 이상 탑승해야 한다.
대원들은 펌뷸런스가 코로나19로 인한 응급구조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자평했다. 장 소방장은 "코로나19 이후 구급차들이 소방서를 몇 시간씩 비우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펌뷸런스가 그 빈자리를 잘 메우고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펌뷸런스 출동 건수는 1,042건으로 전년 927건에 비해 12.4% 늘어났다. 소방 관계자는 "2015년 3월 서울에 펌뷸런스 체계가 도입된 이래 구급차가 꾸준히 증차되면서 펌뷸런스 출동 건수가 감소하는 추세였다"며 "지난해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하는 등 구급차 공백을 일으키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출동 건수가 도로 늘어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원들은 보다 원활한 응급 환자 구조를 위해 펌뷸런스를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는 반대했다. 장 소방장은 "펌뷸런스는 앰뷸런스처럼 환자를 눕힐 공간이 없고 기동성이 떨어진다"며 "예산 확대를 통해 구급차와 인력을 늘려야 응급 환자 구조 및 이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꼭 필요한 신고만 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이 소방위는 "119를 통해 '반지가 손가락에서 안 빠진다'는 류의 신고도 들어오는데, 우리는 신고 거부권이 없기 때문에 출동부터 복귀까지 30분 이상을 꼬박 허비해야 한다"며 "단순 신고를 자제해주시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원래 4인 대원 중 3명이 참석한 인터뷰였는데, 김정은 소방장은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출동 지령을 받고 급하게 자리를 떴고 1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그날도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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