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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던 길거리 냉장고가 가득 찼다...주민들의 음식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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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던 길거리 냉장고가 가득 찼다...주민들의 음식과 사랑으로

입력
2022.03.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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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관악구에 첫 선보인 '그린냉장고'
누구나 냉장고 열어 음식 나누고, 가져갈 수 있어
취약계층 접근 늘리고자 오프라인으로 옮겨와
"음식 공유가 문화로 자리 잡아 이용자 더 늘길"

18일 오픈한 그린냉장고 2호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다인테이블 팀원들의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18일 오픈한 그린냉장고 2호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다인테이블 팀원들의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지난해 12월 관악구 한 도로변에 생긴 냉장고는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집에서 통조림이나 음료, 반찬을 가져와 넣어두는 사람도, 이것들을 가져가는 이들도 있다. 냉장고 앞에는 감사하다는 말이 적힌 작은 포스트잇 몇 개가 붙기도 했다. 냉장고 속 음식을 채우고, 비웠던 많은 이들 중 메시지를 남긴 이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음만은 온전하게 전해졌다.

많을 다, 사람 인. 여섯 명의 대학생으로 이뤄진 다인테이블은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식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잘 운영되고 있던 온라인몰 사업을 접고 이들이 그린냉장고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 주민들과 음식 나누는 '그린냉장고'

관악구 책N꿈 어린이 도서관 앞에 위치한 그린냉장고 1호점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관악구 책N꿈 어린이 도서관 앞에 위치한 그린냉장고 1호점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그린냉장고는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음식을 이웃과 나눌 수 있도록 만든 공유냉장고다. 음식이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 공유냉장고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 누구나 음식을 공유하고 또 가져갈 수 있다. 관악구 책N꿈 어린이 도서관 앞에 위치한 그린냉장고에는 즉석 밥이나 통조림, 반찬 등이 공유되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양배추 같은 야채류나 김치, 봄동이 있을 때도 있다.

그린냉장고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근처에 거주하는 1인 가구 학생들도, 40~50대의 주부도, 나이가 지긋한 노인분들도 있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을 때는 비치된 스티커에 유통 기한을 꼼꼼히 적어 붙여야 한다. 김씨는 "처음에는 귀찮아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지금껏 스티커 부착이 안 돼 있어서 곤란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포인트 제도'도 있다. 냉장고 내부에 있는 저울에 공유하고자 하는 음식의 무게를 달아 그린냉장고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로 사진을 보내면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음식은 무게의 절반, 음료는 25%만큼 적립된다. 앞으로는 현금으로 환급도 가능하다는 게 다인테이블 측 설명이다. 냉장고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도 운영 중인데, 매일 냉장고 내부 사진을 찍어 채팅방에 공유하고 있다.


온라인몰 사업에서 공유냉장고로 오기까지

그린냉장고 내부의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그린냉장고 내부의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그린냉장고를 운영하고 있는 다인테이블은 서울대 경영학회 소속으로 여섯 명의 대학생이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그린냉장고로 첫 발걸음을 내민 건 아니다. 상태에는 이상이 없지만 판매기한 내에 팔리지 못해 버려질 뻔한 상품들을 '온라인몰'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 것이 먼저다.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진행했던 온라인몰 사업을 접기로 결심한 건 취약계층의 접근성 때문이었다. 김세현씨는 "팀원들과 함께 사당의 한 수녀원에서 배식 봉사를 하며 저희 온라인몰의 한계를 느꼈다"며 "이미 식품 가격은 정해져 있고 거기에서 5%도 안 되는 마진으로 판매했지만 취약계층에게는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일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온라인몰 회원수는 900명이 넘었지만 다인테이블은 취약 계층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을 접었다. 공유냉장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인테이블은 그린냉장고를 준비하며 이미 100개가 넘는 공유냉장고가 운영되고 있는 수원을 직접 방문했다. 공유냉장고 봉사를 통해 운영자들을 직접 만나뵙고 실제 이용층과 관리 방법을 조사했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며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회의를 한 적도, 일주일에 다섯 번 넘게 팀원들과 만난 날들도 있었다.

서울 인수동에 있는 공유냉장고 앞에서 설문 조사를 진행해 시민들이 냉장고를 알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했다. 김세현씨는 "잘 몰라서 사용한 적이 없다는 답변도 있었고, 공유냉장고인 것은 알았지만 그 옆의 광고는 알지 못했다는 답변이 대다수였다"며 "수익성이 보장돼야 지속해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기에 냉장고 디자인에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는 도로에, '초록색' 냉장고를 설치한 이유다.


'저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 받기도

그린냉장고를 통해 공유된 음식의 모습. 공유된 음식 위에는 유통기한을 표기한 스티커가 모두 붙여져 있다. 다인테이블 제공

그린냉장고를 통해 공유된 음식의 모습. 공유된 음식 위에는 유통기한을 표기한 스티커가 모두 붙여져 있다. 다인테이블 제공

그린냉장고를 보고 다인테이블로 먼저 연락을 준 사람들도 있다. 출근길에 그린냉장고를 본 한 여성은 "직접 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지만 꼭 나눔에 참여하고 싶다"고 기부 의사를 밝혔다. 김씨는 "현재 책N꿈 도서관의 목사님께서 그린냉장고의 운영을 도와주고 계신다"며 "목사님께서 연락 주신 분의 댁에 직접 방문해서 음식을 받아 오셨다"고 전했다. 낙성대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도 연락을 먼저 주셨다. 그는 이어 "음식이 많이 남는데, 주변에 그린냉장고가 있으면 꼭 넣어드리고 싶다고 하셨다"며 "어떻게 진행할지 사장님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인테이블은 관악구 근처의 가게 50곳에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를 돌렸다. 그린냉장고 옆에 유기발광다이오드(LED) 패널을 부착해 지역 소상공인분들의 광고를 싣고 광고비는 그린냉장고 운영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거절 또 거절을 겪고 나서야 그린냉장고의 취지에 공감한 한 카페와 광고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18일에는 신대방역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숍 '1.5도씨' 앞에 그린냉장고 2호점도 열었다. 김씨는 "현재는 포인트를 현금으로 환급하고 있지만 제로웨이스트숍들과 협업해서 앞으로 환경을 지킬 수 있는 물품으로 돌려주는 방향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악용 우려보다는 우리 사회의 '선순환' 생각해야

SNS에서 그린냉장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누리꾼의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SNS에서 그린냉장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누리꾼의 모습. 다인테이블 제공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린냉장고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이디어"라며 "더 많은 공유냉장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동네에도 그린 냉장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도, 냉장고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오늘 당장 통조림 햄을 쌓아놓고 오겠다는 이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지나가다가 그린냉장고를 보고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며 "한 번씩 가서 와르르 채워놓고 와야겠다"(thom****)고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좋은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악용 가능성을 지적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관리 미흡으로 냉장고가 '음식물 쓰레기 창고'로 변질되거나 누군가 고의적으로 음식에 테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인테이블은 안전한 먹거리 나눔을 위해 냉장고 관리에 힘쓰고 있다. 폐쇄회로(CC) TV 설치는 물론 매일 음식의 상태와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폐기하고 있다. 김씨는 "현재는 안전 문제를 고려해 개봉되지 않은 가공식품만 받고 있다"며 "조리되지 않은 식품을 넣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누리꾼은 "이런 마음 따뜻해지는 실천에 악용 가능성을 먼저 떠올리는 게 어쩔 수 없으면서도 슬프다"(soba****)며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비워지는 그린냉장고를 보며 음식이 간절하게 필요한 누군가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세현씨는 "많은 분들이 그린냉장고에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집에 있는 남은 음식을 공유냉장고에 넣어두고, 그 음식을 누군가 수령해가는 선순환이 문화로 잘 자리 잡았으면 한다"며 "이용자분들이 더 많이 이용해주시고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세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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