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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에는 장애인이 없다

입력
2022.03.01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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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3일 서울역 4호선 승강장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지하철 시위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23일 서울역 4호선 승강장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지하철 시위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주일 동안 혼자 작은 실험을 하나 해봤다.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과연 몇 명의 장애인을 마주치는지에 대해서였다. 경기도 외곽에 사는 덕에 지하철 경의중앙선과 3호선, 광역버스, 마을버스 등 다양한 대중교통에 왕복 3시간 이상 몸을 싣고 있으므로 적어도 서너 명은 만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휴일을 제외한 5일 내내 지하철과 버스의 인파에 시달렸지만 단 한 명의 장애인도 마주치지 못했다.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시(市)에 통근하는 장애인이 없을 리가 만무할 텐데 말이다.

의문은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가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온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보고 저절로 풀렸다. 시위라지만 장애인들은 딱히 지하철을 멈추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휠체어를 탄 채 출근길이나 퇴근길 지하철에 탑승하려고 했을 뿐이다. 지하철에 타고 내리는,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적인 행동을 장애인이 하자 시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저마다의 목적지를 위해 지하철에 자리한 대중 사이에 장애인의 자리는 없었다.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은 장애인에게 여전히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이다.

2021년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20주년을 맞는 해였다. 이동권은 장애인도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당연한 요구다. 대중교통에서 대중의 의미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다. '사람'에는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도 포함되지만 현실은 달랐다. 비장애인은 별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매일같이 타는 대중교통에 오르려 장애인은 20년간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고 도로와 철로에 드러누워야 했다. 적지 않은 이들은 목숨마저 잃었다. 수많은 장애인의 희생 후에야 지하철에는 하나둘씩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저상버스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최근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지하철이 지연되자 한 승객이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야 한다'라고 호소했다는 이야기를 많은 언론이 기사로 다뤘다. 이동권 시위에 나선 활동가가 여기에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답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엄청난 분노와 비난이 쏟아졌다. 비장애인의 피 같은 세금으로 지원을 받으면서 배부른 시위를 한다는 눈총도 적지 않았다. 신원 미상의 남성이 전장연 사무실에 불을 지르겠다고 하는 등 실질적인 위협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정작 장애인은 같은 대답을 수십 년간 반복해서 들어왔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도 지하철에서 이동권 시위를 한다는 보도에는 거기서 그러지 말고 장애인 콜택시나 버스를 타라는 댓글이 달린다. 장애인 콜택시는 평균 대기 시간만 48분이고, 버스 역시 언제 올지 모르는 저상버스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된다. 저상버스 도입률은 전국 기준 28%로, 10대 중 7대는 장애인이 아예 탈 수 없는 버스다. 서울 지하철역 중 아직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역(환승용 포함)이 22곳이나 된다.

장애인에게 들어가는 피 같은 세금을 줄이고 싶다면 확실한 방법이 있다. 이들의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하면 된다. 집 밖으로는 마음대로 다닐 수조차 없는데 어떻게 스스로 돈을 벌겠는가. 장애인도 자립을 위해 출퇴근하려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이 필요하다. 하나 인파 많은 시간대에 대중교통에 타는 일만으로도 시위의 딱지가 붙는 현실에서 장애인의 자립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이 '이동권은 생존권'이라고 외치는 이유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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