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을 무렵, 미국의 리버럴(미국식 자유주의자)들은 환희에 빠졌다. 좌파적 관점에서 우파와 리버럴을 비판해왔던 연구자 앤절라 네이글은 최근 국내에 출간된 ‘인싸를 죽여라’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말실수를 연발해 고학력자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던 조지 W. 부시와 대조적으로 오바마는 세련되고 박식했고 세계시민주의적이었기에 “잠시나마 희망과 낙관이 집단적으로 분출하고 평등주의의 몽상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던 순간”이었다. 이러한 낙관적 전망에 힘입어 온라인 공간도 민주적 공론장으로 거듭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10여 년간 온라인에서는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온라인은 전쟁터에 가까워졌다.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를 찾아내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현상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네이글은 정치적 올바름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진영의 반대편에서 나타난 △백인우월주의자 △페미니즘 반대자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한 극우주의자들의 느슨한 연대체가 이러한 현상을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대안우파(alt-right)’ 등으로 불리는 이들 진영은 인종·난민·젠더·페미니즘과 관련된 사회 문제에서 특히 목소리를 높여왔다. 대중문화의 언어와 이미지를 차용해 만들어지는 온라인 게시물인 밈(meme)과 저속한 표현, 혐오표현이 이들의 무기다.
대안우파의 부상은 제도권 정치인이나 언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나타난 젊은 극우주의자들은 ‘주류 매체’들이 하위문화로 분류하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 등에 기반한 블랙 유머에 익숙하다. 밈을 유행시켜 상대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발언권을 약화시킨다. 네이글은 기득권 정치부터 리버럴 대학생이 모이는 텀블러 등에서 “지적 순응주의가 간절함과 도덕적 자화자찬으로 표현될 때” 대안우파는 “이를 신나게 조롱한다”고 표현한다.
네이글은 저서에서 대안우파들이 주로 활동하는 포럼에서 자주 쓰이는 혐오표현들이 나타난 배경과 쓰임을 분석한다. 공론장에 옮기기 어려운 극단적인 것들도 있다. 역자 김내훈이 ‘인싸년(basic bitch)’이나 ‘인싸(normies)’로 번역한 표현들은 포챈 등의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인다. 직역하면 ‘평범한 년,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커뮤니티에서는 경멸적 의미로 쓰인다. 직장에 다니거나 연애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들을 ‘평범하게’ 수행하며 ‘주류의 감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사람들을 증오하고 멸시하는 표현이다. 역자는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스스로를 비자발적 독신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증오를 불태우는 이들 중 상당수가 “삼십대 이하의 젊은 남성들”이라면서 “알파 메일(우월한 남성) 때문에 ‘번식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믿는 데서 오는 열패감”이 표현에 담겨 있다고 덧붙여 설명한다.
이들에게는 기독교적 윤리를 따르는 전통적 미국 보수주의자들 역시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한때 대안우파의 스타였던 마일로 이아노풀로스가 음란물 검열에 대해서 남긴 발언은 이들과 보수주의자들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대안우파는 진보 좌파가 문화를 옥죄는 방식인 표현의 자유의 제한, 지나친 통제, 권위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중략) 1990년대 종교적 우파가 하려던 짓과 똑같이 진보 좌파가 하려는 것에 대한 반동, 즉 무엇을 말할 수 있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통제하고 사상을 검증하려는 것에 대한 반동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에 대안우파는 제도권 영역으로 진출한다. 기득권 세력이 이들을 청년 집단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정치력을 강화하는데 이용하면서 대안 매체를 만들던 무명 인사들이 대통령과 면담하는 장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들을 싸잡아 비판하던 진보세력과 좌파 역시 이러한 현상을 바로잡지 못했다.
비판하는 대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좌파를 비판하던 지식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에 “좌파의 여성혐오도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트윗을 남기는 식이다. 네이글은 지난 수년간 온라인 좌파들 사이에서 이뤄진 조직적 인신공격 및 비방과 숙청을 두고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이러한 유형의 좌파로 대표되는 유해하고 당혹스러운 온라인 정치는 좌파를 새로운 세대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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