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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성차별'의 결과물, 바로 윤석열 세대다

입력
2022.02.26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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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시험 잘 본 여학생들은 어디 갔을까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비평 전문가 이연숙 작가는 영화, 미술, 만화 등이 여성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통해 성별화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TV광고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 국민편'. 유튜브 캡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TV광고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 국민편'. 유튜브 캡처


지난 15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TV광고가 공개되었다. 광고에는 성차별 현실을 심하게 왜곡하는 장면이 있었다. 정장을 차려 입은 한 남성이 신입사원 공개채용 면접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앞을 보니 면접관 3명 중 2명이 여성이다. 옆을 보니 환하게 웃고 있는 여성 면접자가 있다. 이에 남성 면접자는 위축된다. 면접장을 나오면서 가슴에 부착한 수험표를 거칠게 떼고 만다. 이때 흐르는 내레이션과 자막.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고."

현실은 '관행'이 된 구조적 성차별

광고는 여성 면접관이기에 여성 지원자에게 혜택을 준 것같이 표현했다. 그러나 같은 여성끼리 봐주려 해도 여성 면접관 자체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성차별로 인해 고위직까지 승진하는 여성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 비율은 4.8%로, 유리천장지수가 OECD 국가 중 9년째 꼴찌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채용담당 임원이나 면접 담당자 중 여성 비율은 실무면접 22%, 최종·임원면접 16.5%였다. 여성은 면접 시 특혜는커녕 오히려 여성 응시자에게만 불리한 질문을 하는 형태로 성차별을 받고 있다. 남자친구 존재 여부나 결혼, 출산 계획, 군대나 미투에 대한 의견을 묻는 등등.

한편, 면접이 끝난 후에 심사위원이 부여한 점수를 조작해 여성 지원자들을 탈락시킨 사례도 많다. 2015년 상반기에 채용성비 조작으로 남성을 110명을 더 채용하여 기소된 (KB)국민은행이 대표적이다. 올해 1월 대법원은 국민은행 임직원 4명 모두에게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사건의 1심 선고문을 보자. "ㄱ씨 등은 심사위원이 부여한 점수를 사후에 조작하는 방법으로 여성을 채용에서 배제하고 청탁으로 특정인을 합격자로 만들어 채용 절차를 방해했다. 다만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고 볼 사정이 없고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는 과정에서 범행에 이르게 됐다." 여기에서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는 과정에서"라는 대목에 주목. 공정한 법관은 말한다. 구조적 성차별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라고.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는 모순적 발언

같은 법조인 출신인 윤 후보의 의견은 다르다. 윤 후보는 2월 7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여성과 남성과 또 다른 성을 떠나, 어떤 성별이든 구조적인 차별을 받지 않는 세상이니까 차별을 당한다면 개인적 불행이나 능력 부족 차원의 문제라는 말 아닌가. 그런데 윤 후보의 광고는 '남성에 대한 가상의 구조적 성차별'이 있으니까 공정과 상식 차원에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런, 본인 발언의 앞뒤조차 맞지 않는다.

윤 후보만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은 많다. 남성들이나 성차별주의자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많은 분들이 '성차별은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 세대나 있었고 지금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물론 현실과 다르지만, 그렇다하여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성차별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률 따라가지 못하는 여성 지위 '미스터리'

1960년 13세 이상 문맹인구 통계<자료: 통계청>


합계 남자 여자
13세 이상 인구(명) 15,945,809 7,868,346 8,077,463
문맹자(명) 4,454,004 1,240,119 3,213,885
문맹자 비율(%) 27.9 15.8 39.8

보통 성차별이라면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가 당했던 일들 즉 아들은 대학 보내고 딸은 논밭일 집안일 시키고 공장 보내어 아들 학비 벌어오게 희생시키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평생 무시받고 '손발 노동(윤 후보의 표현을 빌렸다)'을 하며 힘들게 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랬다. 1960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의하면 1960년대에 13세 이상 인구에서 문맹률은 28%였는데, 이 중 72.2%가 여성이었다. 여성의 문맹률은 약 40%에 달했다. 딸은 초등학교도 안 보낸 집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남녀 대학 진학률은 같아졌다. 이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보다 높아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에, 사람들은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나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높은 나라에서 여성의 지위는 왜 이렇게나 낮은 것일까? 2021년 현재 우리나라의 성별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고 '성격차지수'는 세계경제포럼 총 156개국 중 102위다. 엄청난 괴리다. 유엔 등 국제 기구에서 미스터리로 여기는 현상이기도 하다. 보통 여성의 고등교육률이 낮은 나라에서 여성의 인권도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이유가 뭘까?

성평등이 아닌, 산아제한이 만든 착시

1970년대 산아제한 캠페인 포스터. 구글 캡처

1970년대 산아제한 캠페인 포스터. 구글 캡처


1960년대 초 한국의 합계 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인 15세에서 49세 사이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6.3 정도로 추정된다. 1961년 박정희는 군부 쿠데타에 성공한 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 하나로 가족 계획 사업을 시작한다.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바로 경제 발전이며 개인과 국가가 잘 살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한다. 이 사업은 1980년대 후반에 실질적으로 종료되기까지 25년간 국가 시책으로 실행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세 자녀를 낳게 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1971년부터 두 자녀로 목표를 수정했다. '세 살 터울 셋만 낳고 35세에 단산하자'는 슬로건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그 결과 1983년에는 합계 출산율이 2.06이 되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82년생'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전에 자녀가 보통 6남매였던 시절에는 부잣집이거나 아주 교육열이 강한 집안이 아닌 이상 장남만 공부시키고 나머지 자녀들 특히 딸들은 희생시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가족 계획 실행으로 자녀가 2명이 되자 이제 딸에게도 학비를 투자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합계 출산율이 2명 이하가 되던 해에서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여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과 같아진다. 통계청이 내놓은 '2005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04년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79.7%(4년제 57.5%)였다. 남성의 82.8%(4년제 60.4%)와 큰 차이가 없다. 적어도, 82년생 김지영 또래 이후부터는 교육 기회에서 성차별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여학생 대학진학률(단위: %)
통계청


즉, 현재 우리나라 여성의 고등교육률이 높아서 사회가 성평등해 보이는 것은 일종의 착시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이 없어졌다거나 성차별 의식이 사라진 결과가 아니라 국가 주도의 강압적인 산아제한 운동이 성공해서다. 자녀 수가 1, 2명으로 줄었기에 부모가 딸에게도 노후 봉양 의무를 기대하고 가정 내 자원을 분배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의 차별 구조와 사람들의 의식은 과거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수준과 변함없거나 서서히 변하고 있는데 교육의 기회를 얻은 딸들, 여성들은 한 세대 정도의 시간 안에 급격히 깨어서 앞서갔다. 그 차이를 사회가, 일반 남성들이 못/안 따라가고 있는 점에서 현재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조적 성차별 세대들의 대선

남성과 여성 고용률. 자료=통계청·여가부

남성과 여성 고용률. 자료=통계청·여가부


따져보자.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지필고사 경쟁으로 대학 입시를 치를 때에는 그렇게나 우수했던 여학생들이 졸업 후 각종 기업 공채에서는 왜 50% 넘게 합격하지 못할까? 군 복무 기간 동안 여성들이 취업 준비를 더 하기 때문에 남자만 군대 가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남자들보다 더 오래 공부하고 준비한 여성들이 왜 남성들보다 20%나 낮은 고용률을 보일까? 취업 후에도 왜 고위직까지 승진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현실이야말로 구조적인 성차별이 있다는 증거다. 무려 21세기에 성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을 반영하는 공약을 내건 대통령 후보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구조적인 성차별이 건재하다는 증거다.

21일 선관위 주관 첫 TV 토론에서 구조적 성차별 문제가 없다는 발언의 사과 의향을 묻는 이재명 후보에게 윤석열 후보가 "굳이 답변할 필요 없다"고 말하자, 이 후보는 재차 "왜 대답하지 않는가. 잘못 말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니 윤 후보는 "그 대답을 하는 데 (발언) 시간을 쓰기 싫어서 그렇다"고 말을 돌렸다. YTN 유튜브 캡처

21일 선관위 주관 첫 TV 토론에서 구조적 성차별 문제가 없다는 발언의 사과 의향을 묻는 이재명 후보에게 윤석열 후보가 "굳이 답변할 필요 없다"고 말하자, 이 후보는 재차 "왜 대답하지 않는가. 잘못 말했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니 윤 후보는 "그 대답을 하는 데 (발언) 시간을 쓰기 싫어서 그렇다"고 말을 돌렸다. YTN 유튜브 캡처


과거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기' 운동의 최대 걸림돌은 남아선호 악습이었다. 1980~1990년대에 여아 성 감별 낙태가 성행한 이유다. 그때 희생된 여아들의 아버지 세대가 1950~1960년대생, 지금 대통령 후보로 나온 남성들 세대다. 그중 한 후보는 태어나기 전부터 구조적 성차별을 한 결과 여성에 비해 인구수가 많아진 2030세대 남성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시간을 아껴가며 노력하고 있다. 바로 지난 21일 선관위 주관 첫 TV 토론에서 구조적 성차별 문제에 대해 "그거 대답하는 데 시간을 쓰기 싫다"고 답한 윤석열 후보다.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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