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우생보호법’이 적용되던 1960~70년대에 일본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강제 불임수술을 당한 피해자 3명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상을 인정받았다. 원심은 불법행위로부터 20년이 지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판결했으나, 항소심은 청구권 발생 시점을 다르게 봤다. 유사한 소송에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법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8년 제정된 우생보호법은 낙태, 피임, 불임 등을 규정한 법으로, 비과학적 우생학에 근거해 정신장애를 비롯해 각종 유전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조항을 뒀다. 반인권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1996년에야 모체보호법으로 명칭이 바뀌며 개정됐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번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청각 장애가 있는 부부와 지적 장애가 있는 여성 등 70~80대 3명이다. 이들 중 한 명은 1974년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도중에 자신도 모르게 불임 수술을 받았고, 아이는 출산 후 사망했다. 일본뇌염의 후유증으로 지적장애가 된 다른 한 명은 1965년쯤 불임 수술을 받았다. 이들은 항소심에서 개정 전 법에 근거한 불임 수술이야말로 국가의 ‘전후 최대 인권 침해’라며 호소하고, 국가를 대상으로 총 5,500만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오사카 지방법원의 1심 판결은 옛 법이 “극히 비인간적이고 차별적이며 합리적 근거도 없다”고 위헌을 인정했다. 그러나 ‘상대의 불법행위로부터 20년이 경과되면 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는 민법상 제척기간 규정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오사카 고등법원 재판부는 국가가 20년이 훨씬 넘은 1996년에 관련 조항을 개정했으니 그때까지는 원고가 “배상청구권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원고들이 정보나 사법에의 접근이 현저하게 곤란한 상태라 제척기간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정의라 할 수 없다”며 국가에 2,750만 엔 배상을 명했다.
NHK에 따르면 비슷한 소송에서 원고 측이 승소한 것은 이번 판결이 처음이다. 일본 전국 9곳에서 제기된 소송은 현재 6건에 대해 1심 판결이 나와 모두 제척기간을 이유로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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