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연구 용역 조사 결과>
인천상륙작전 이후 수세 몰린 인민군
'반동세력 제거 퇴각' 명령받고 학살 자행
"우익 무관한 교회도 적대세력 간주 공격"
6·25전쟁 당시 남침한 북한 인민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천주교인 900여 명을 학살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피랍, 옥사 등 다른 탄압 행위까지 합치면 희생된 종교인은 1,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팀에 의뢰해 진행한 '6·25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된 피해 사례 대부분은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한군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발생했다. 남침 인민군은 그해 추석 당일이던 9월 26일 "반동 세력을 제거하고 퇴각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다음 날부터 며칠간 전국적인 학살을 자행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문헌조사, 관련자 증언, 피해 교회 방문 등 3단계 과정을 통해 당시 희생자 중 종교인 명단을 확보했다. 그 결과 기독교인 849명과 천주교인 54명 등 903명이 피살됐고, 여기에 더해 납북 207명, 옥사 및 병사 33명, 기타 2명 등 총 1,145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종교인 피해는 충남, 전북, 전남 지역에 주로 집중됐다. 충남 논산 병촌교회에선 9월 27~28일 66명이 사살됐고, 이들을 포함해 성동면 일대에서 120명이 인민군에게 살해됐다. 연구팀은 병촌교회 신자들이 특별히 우익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인민군이 교회 자체를 적대세력으로 간주해 집단 학살을 벌인 것으로 분석했다.
전북 김제 만경교회는 우익 활동에 연계됐다는 이유로 학살 피해를 입었다. 김제 지역에선 1950년 9월 초 반공투쟁의 일환으로 '반공혁명단'이란 단체가 생겼는데 단원 10명 중 4명이 교인이었다. 인민군은 만경교회를 반공혁명단 배후 세력으로 간주하고 이 교회 목사와 장로, 집사 등 15명을 살해했다.
일부 인민군은 퇴로가 막혀 산간지대로 도피했다가 유엔군이 지나가자 다시 마을로 내려와 우익 세력을 공격하며 기독교인까지 학살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 영광이 대표적 사례로, 이 지역 염산교회, 야월교회 등에 소속된 교인 186명 가운데 140명 이상은 인민군 패잔병이나 좌익 잔존세력에 희생됐다. 영광은 6·25 기간에 가장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지역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전북 완주의 마재교회·단지동교회·학동교회, 군산의 원당교회·해성교회·지경교회, 울산의 월평교회, 강원 장흥교회·철원교회 등에서도 인민군 학살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정부가 나서서 피해자 실태를 조사하고 유가족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면담 과정에서 대한민국과 종교의 자유를 위해 희생된 기독교인의 유가족이 매우 비참한 삶을 살고 있고 국가 권력의 무관심을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국가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위로와 적절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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