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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37억 들인 생태통로… 수년째 꽉 막혀 방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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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세금 37억 들인 생태통로… 수년째 꽉 막혀 방치됐다

입력
2022.02.24 09: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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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습지생태공원-개화산 관리소홀로 무용지물
한강사업본부, 통로 관리대상 여부 파악 못해
전문가 "지금이라도 열면 야생동물 이용할 것"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내 생태공원과 개화산을 연결하는 생태통로 수문이 수년째 닫혀 있다(왼쪽). 생태통로로 가는 옆 찻길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 고양이 사체. 고은경 기자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내 생태공원과 개화산을 연결하는 생태통로 수문이 수년째 닫혀 있다(왼쪽). 생태통로로 가는 옆 찻길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 고양이 사체.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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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내 생태공원과 개화산을 연결하는 생태통로(도로, 댐 등으로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가 끊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놓는 인공구조물) 입구로 가는 길. 억새와 가시덤불을 헤치며 걸어가던 중 고양이 사체가 눈에 띄었다. 현장에 동행한 생태통로 전문가는 "확신하긴 어렵지만 한쪽 털이 쓸린 것으로 보아 바로 옆 올림픽대로를 건너다 사고를 당한 후 이곳으로 와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물들이 개화산으로 갈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하는 생태통로 입구 수문은 굳게 닫힌 상태였다. 전날 내려 쌓인 눈 위에는 동물들이 입구까지 왔다 돌아간 발자국들이 선명했다. 생태통로 전문가는 "한강이 범람할 때 침수되지 않도록 통로 입구에 수문을 설치했다"며 "수위에 따라 수문을 조절해야 하지만 항상 닫혀 있어 동물들이 아예 생태통로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서구 개화산 쪽 생태통로 입구는 경사가 급한 곳에 위치해 동물들이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고은경 기자

서울 강서구 개화산 쪽 생태통로 입구는 경사가 급한 곳에 위치해 동물들이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고은경 기자

반대편 개화산 쪽 생태통로 입구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생태통로 입구 주변에 1m이상 높은 울타리가 설치돼 동물들의 접근은 거의 불가능했다. 울타리 넘어 가시덤불을 뚫고 도착한 생태통로 입구는 움푹 파인 지형에 위치, 경사가 급해 동물들이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23일 취재 결과 올림픽대로로 막힌 한강습지생태공원과 개화산 두 지역 생태계를 연결하고 동물들의 찻길 사고(로드킬)를 막기 위해 조성된 생태통로가 수년째 방치된 채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주체인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취재가 들어가기 전까지 생태통로가 관리 대상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막힌 생태통로 앞에서 돌아선 동물 발자국들

개화산-강서습지생태공원 잇는 생태통로. 그래픽=강준구 기자

개화산-강서습지생태공원 잇는 생태통로. 그래픽=강준구 기자

한강습지생태공원은 서울에서는 드물게 자연 생태계가 보존돼 너구리, 족제비, 고라니 등이 사는 서식지로 꼽힌다. 2011년 경인아라뱃길이 완공되며 경기 김포시 전호산과 갈라지기 전까지 최상위 포식자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삵도 포착되던 곳이다. 2010년 당시 생태공원에 살던 고라니가 올림픽대로를 건너다 로드킬이 발생하는 등 두 지역의 생태계가 단절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서울시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에 야생동물 모니터링과 생태통로 계획에 관한 연구용역을 맡겼다.

서울 강서구 한강습지생태공원은 서울에서는 드물게 생태계 공간이 보존돼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꼽힌다. 낮에는 억새 사이가 동물들의 쉼터가 된다. 고은경 기자

서울 강서구 한강습지생태공원은 서울에서는 드물게 생태계 공간이 보존돼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꼽힌다. 낮에는 억새 사이가 동물들의 쉼터가 된다. 고은경 기자

연구용역 결과 그해 4월부터 10월까지 고라니, 삵, 너구리 등 9종의 야생동물이 올림픽대로에서 찻길사고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는 이를 기반으로 행주대교 남단 나들목 부근 생태공원과 개화산 기슭을 연결하는 생태통로 조성에 나섰다. 시공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맡았다. 생태통로는 올림픽대로 밑을 지나는 터널형태로 공사비 37억 원을 들여 길이 144m, 높이 1m 규모로 2013년 12월 완공됐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은 이듬해 1월 서울시 도로시설과에 생태통로 관리를 인계했고, 2016년부터는 한강사업본부가 관리 주체가 됐다.

하지만 한강사업본부는 생태통로가 관리 대상인지, 양쪽 입구가 언제부터 닫혀 있었는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담당자가 바뀌면서 인수인계 과정에서 생태통로 관리가 누락된 것 같다"며 "언제부터 생태통로 양쪽 입구를 닫아 놓았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공원 쪽 입구는 한강 수위가 높아지면 범람할 우려가 있어 닫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개화산 쪽 입구는 안전상 시민 출입을 막으려 울타리를 쳐놓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설 보완해 생태통로 열면 야생동물 이용할 것"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내 생태통로 입구에는 전날 내려 쌓인 눈 위로 동물들이 입구까지 왔다 돌아간 발자국들이 선명했다. 고은경 기자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내 생태통로 입구에는 전날 내려 쌓인 눈 위로 동물들이 입구까지 왔다 돌아간 발자국들이 선명했다. 고은경 기자

생태통로가 방치된 사이 해당 지역에선 생태통로를 이용하지 못한 야생동물이 로드킬을 당해 종종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이 고라니와 고양이 등 로드킬 다발 구간으로 꼽히면서 서울시설관리공단은 지난해 생태공원과 개화산 사이 올림픽대로 관통구간 울타리를 정비하고 배수로 틈새를 보완하는 작업을 했다.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내에서 발견된 멧밭쥐 둥지. 고은경 기자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내에서 발견된 멧밭쥐 둥지. 고은경 기자

익명을 요청한 생태통로 전문가는 "생태통로를 열면 이용하는 동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원 쪽 생태통로 입구는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이기 때문에 배수작업이 병행돼야 하고, 개화산 쪽 입구는 울타리 노선을 조정하고 경사로를 완만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이성일 한강사업본부 생태환경과장은 "생태통로 시설 자체에 대한 보완뿐 아니라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변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생태통로 개방 여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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