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채용 규모 축소
취준생들은 무한 스펙 쌓기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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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물_5대 그룹 채용 방식
#.수도권 4년제 인문계열 재학생 김모(26)씨는 번번이 인공지능(AI)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AI 면접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액의 컨설팅까지 받았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AI에게 잘 보이는 팁을 연습하고 있다 보면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온다"며 취업 스트레스에 따른 부작용을 호소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줄어들면서 취업 문턱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들 사이에서도 필요한 인력만 공고를 내서 뽑는 상시 채용이 대세다. 채용 시장에 자리한 경력자 우대 분위기도 취업 준비생들에겐 부정적이다. 여기에 최근 보다 객관적인 인재 선별을 명분으로 도입된 AI 면접도 취준생들에겐 또 다른 부담이다.
공채 없어지고 경력 선호 현상...갈 곳 없는 취준생
21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대규모 공채 대신 상시 채용으로 전환했다. 현대차, SK, LG, 롯데 등 주요 그룹이 공채 제도를 폐지하면서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삼성만 공채를 뽑고 있다. 기업들이 공채 대신 각 부서에서 필요한 인력만 상시로 뽑게 되면서 전체 채용 규모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수많은 지원자 중 일부를 골라 각 부서에 배치하는 공채가 직무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다"며 "더 많은 기업들이 상시채용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공채 자체가 없는 인터넷 기업들은 아예 경력자 중심으로 채용을 실시한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경우 서비스 개발 인력에 대해 7년 이상 경력자로 제한을 두기도 했다. 최근 신선식품 전자상거래 업체인 마켓컬리의 채용설명회는 5년 이하 경력 개발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AI, 빅데이터, 가상현실(VR), 그래픽 등 업무를 수행하는 개발인력의 경우 사실상 대졸 공채를 뽑아서는 충족되지 않는다"며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보고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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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억지웃음 짓는 신종 고문"...AI한테 평가받는 처지
최근 채용 과정에 접목된 AI 면접도 취준생들에겐 넘어야 할 관문이다. 교육기업 단델리온커리어에 따르면 LG, SK, CJ 등 지난해 기준 450개 이상의 기업이 AI 면접을 사원 채용에 적용하고 있다. 이는 AI 면접관이 목소리, 표정변화 등 비언어적 부분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해당 지원자에 대한 신뢰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취업 준비생들에겐 아직까지 생소한 AI 면접에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온라인 채용 관련 커뮤니티에선 "AI 면접에선 어떤 기준에 의해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지 알기 어렵다"며 "AI한테 잘 보이려고 억지웃음을 짓다 보니 고문을 당하는 것 같다"는 식의 후기도 올라오고 있다.
교육기업인 단델리온커리어의 김수인 대표는 "무표정이나 떨림이 많은 목소리로 AI 면접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할 때 드러나는 본인의 언어습관이나 불안정한 음성과 표정은 신뢰도를 매우 떨어뜨려 탈락할 확률이 높다"며 "본인의 음성과 표정이 다 평가가 되고 있다고 인지하고 면접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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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 청년 SW 아카데미'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SSAFY' 7기 입학식에 참석한 교육생들과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스펙만 된다면 무급도 OK...중견기업 거쳐 대기업 도전하는 '중고 신입'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취준생들은 무한 경력 쌓기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진행하는 '삼성 청년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는 대학생 사이 선호 1순위 자격조건(스펙)으로 불린다. SSAFY에 선정된 교육생은 1년간 집중적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으면서 기업 현장에 즉각 투입될 수 있는 실전형 개발자로 양성된다. 상당수 기업이 SSAFY 교육생에게 서류나 코딩테스트를 면제해주는 특권을 주면서 SSAFY 합격을 위한 컨설팅 강의나 스터디 모임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무급으로 이뤄지는 대외활동 경쟁률도 높다. 올해 한 시중은행에 취업한 이모(28)씨는 "서류와 면접에서 이야기를 풀어놓을 스토리가 있으려면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 경험이 필요했다"며 "취준생들은 직무와 관련된 대외활동을 사실상 취업을 위한 투자로 생각하는 만큼, 무급이어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중소·중견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대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옮겨 가는 속칭 '중고 신입' 사례도 있다. 2년 전 대기업 신입사원이 된 남모(33)씨는 약 1년 반가량 중소기업에서 직무 경험을 쌓고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재입사했다. 남씨는 "직장 경력이 사라지지만 더 많은 급여와 복지, 사회적 만족감 등으로 중고신입이 됐다"며 "직장에서도 직무 경험이 있는 중고신입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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