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 반군 "우크라 정부군 상륙작전 준비 첩보" 주장
우크라 "반군이 되레 공격... 대응 사격 안 했다" 반박

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친러 반군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역 최전선인 포파스나 인근 참호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 포파스나=AP 연합뉴스
친(親)러시아 반군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포격했다고 러시아 매체가 17일(현지시간) 보도하면서 전쟁이 개시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이 지역 안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러시아 간 외교 협상이 긴밀하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들려온 공격 소식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특히 이날 교전 소식은 러시아 하원이 돈바스 지역 독립을 승인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우크라이나가 이 문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도움을 요청하는 등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해지면서 위기가 고조됐다. 일각에서는 2014년 크림반도 공습 때와 같이 러시아가 ‘자작극’을 통해 개전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과 스푸트니크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루간스크공화국(LPR)과 공동통제조정위원회(JCCC)를 인용해 우크라군이 이날 오전 2시 30분(국제표준시)쯤 루간스크공화국과 도네츠크공화국(DPR) 9개 마을에 박격포와 수류탄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루간스크공화국 측은 “우크라군이 (돈바스 휴전 협정인) 민스크 협정에서 철수하도록 규정된 무기들을 이용해 휴전 체제를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도네츠크공화국 민병대도 “정부군이 러시아, 크림반도와 맞닿은 아조프해 연안을 포위하기 위해 상륙작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거들었다.
우크라이나는 즉각 부인했다. 우크라군 작전 담당 공보관은 이날 로이터통신에 “(반군이 민스크 협정에서 금지한) 122㎜ 포로 아군 진지를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응 포격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는 상황이지만, 실제 일부 지역에서 군사적 공방이 있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 돈바스는 지난 2014년부터 친러시아 성향 반군과 정부군 사이 교전이 끊이지 않아 민간인을 포함해 지금까지 1만5,000명 안팎이 사망하는 등 대표적인 분쟁 지역으로 꼽힌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우크라이나 특별모니터링미션(SMM)의 16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14일 오후 7시 30분부터 15일 오후 7시 30분까지 24시간 동안 수십 건의 총성과 폭발이 관측되는 등 돈바스 지역에서 교전은 일상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교전 시점이 공교롭게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억압이 자행되고 있다며 “민스크 협정 위반이자 집단학살”이라 주장하고, 러시아 하원인 두마가 이 지역 독립을 승인할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직후라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돈바스 독립 추진과 관련해 17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안보리 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뤄 달라고 요청하면서 돈바스가 새로운 갈등의 뇌관으로 떠오른 상황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군의 돈바스 공격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때와 비슷한 자작극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공작원들을 우크라군으로 위장시켜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들을 공격하도록 한 다음 이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군을 투입하는 ‘위장 깃발 작전’을 쓸 수 있다고 잇따라 경고해 왔다. 실제 이 작전을 수행할 공작원들을 배치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미국 정보당국은 전하기도 했다.
포격 공방 보도는 러시아 관영 매체인 리아노보스티와 스푸트니크에서만 보도됐다는 점에서 이런 의혹은 신빙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그간 미국 등 서방은 이들 매체가 러시아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왜곡된 뉴스를 생산한다고 비판해 왔다. 러시아 최대 통신사인 국영 타스통신은 이번 교전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 데니스 모나스티르스키 우크라이나 내무장관은 전날 “우크라이나에서 기록되는 가짜 포격 보고는 대부분 도네츠크 및 루간스크 지역, 러시아, 벨라루스 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심리전, 위장 전술에 익숙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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