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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만원에 인수한 사진관이 벌써 43년 됐네요”

입력
2022.02.19 05:30
수정
2022.03.17 11: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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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경기 김포 세종스튜디오

경기 김포시 북변동에서 43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가 1978년 개업 당시 사용하던 아사히 펜탁스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경기 김포시 북변동에서 43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가 1978년 개업 당시 사용하던 아사히 펜탁스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주머니에 든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 사진관은 일찌감치 퇴색했다. 동네 골목마다 자리를 잡고 사진을 구워 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사진관은 고사하고 ‘사진관 보유 동네’도 요즘엔 드물다. 사진을 찍어 주고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모질고 거친 세상이라는 이야기. 그러나 경기 김포 북변동의 사진관 ‘세종스튜디오(사진마을)’는 디지털 시대 풍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문을 열고 있다. 한자리에서 올해로 43년째다.

지난 11일 찾은 세종스튜디오는 한눈에도 심상치 않았다. 해방 직후부터 김포 최고의 도심으로, 한때 ‘김포의 명동’으로까지 불렸다는 북변동에 자리 잡은 사진관이지만 세월을 이기진 못했다. 늙수그레한 건물 2층에 걸린 간판, ‘코닥필름 17분 칼라’가 그곳에 사진관이 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밖에 내건 간판은 전화번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이 바랬다.

낡은 계단을 밟고 2층 사진관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이곳 주인 유영화(71)씨는 “42년 전, 맞은편 건물에서 개업 1년 만에 이곳에서 신장개업한 당시 구조 그대로”라며 “하지만, 그사이 카메라와 조명 등은 셀 수도 없이 바뀐 신기종”이라고 자랑했다. 그 옆에 놓인 백일·돌 사진 촬영에 쓰이는 소품들도 최신에 준하는 것들로 깔끔하게 구비돼 있었다.

개업 1년 만이던 1978년 이전, 신장개업한 2층 사진관과 간판 모습. '저곳에서 과연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진관이다. 임명수 기자

개업 1년 만이던 1978년 이전, 신장개업한 2층 사진관과 간판 모습. '저곳에서 과연 사진을 촬영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진관이다. 임명수 기자

지금은 2층의 낡은 사진관이지만, 주인 유씨는 한때 사진관 2개를 돌렸던 큰손이었다. 지금 자리에 '사진마을'로 신장개업했다가 컬러필름이 일반화하면서 사업이 번창, 1층에 '세종스튜디오'를 추가 개업했다. 그러다 일회용 필름카메라까지 등장해 사진 인구가 늘어난 1990년대 중반 지금의 2층으로 통합했고, 마을 사람들은 2층의 이 사진관을 아직도 세종스튜디오로 부른다.

관광산업에서 발견한 사진의 미래

‘카메라’의 ‘ㅋ’자도 모르던 그가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된 건 우연이다. 친구가 잘 하던 스튜디오를 접고 중국집을 차리겠다고 나서자 42년 전 인수했다. 유씨는 “친구가 사진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게 전부였지만, 사진에서 묘한 매력을 느껴 인수를 결정했는데, 그 결정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이게 운명이 아니고 뭐겠냐”고 말했다. 인수대금은 180만 원. 당시 소득 증가로 국내 관광 붐이 일던 때, 전세버스 업체와 손잡고 김포 사람들을 강원 설악산, 부산 광안리, 여수 오동도 등지로 실어 보내는 일을 하던 그였다.

그는 “카메라가 대중화하기 전에 사람들의 여행이 본격화했는데, 추억을 남기고 싶은 이들은 스튜디오에 요청해 동행 촬영을 하기도 했다”며 “관광업에서 보고 느낀 게 없었다면 사진관 인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화씨가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4컷짜리 컬러필름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어른 버스요금이 100원 남짓하던 시절, 이 필름의 가격은 1,800원이었다. 임명수 기자

유영화씨가 지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4컷짜리 컬러필름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어른 버스요금이 100원 남짓하던 시절, 이 필름의 가격은 1,800원이었다. 임명수 기자

지금은 촬영한 뒤 바로 확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찍고, 그래도 부족하면 편집을 하면 되지만 당시만 해도 달랐다. 찍은 사진을 암실에 들어가 현상하고, 그걸 다시 인화지에 구워내야 했다. “어른 버스요금이 100원 조금 넘을 때, 4장짜리 필름 한 통이 1,800원이었어요. 필름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셔터 한번 한번에 온 정성을 기울여서 찍어야 했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결혼식 사진에서 신부가 눈을 감았던 것을 모르고 앨범까지 제작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학생증 제작을 위해 40장을 찍었는데 암실에서 필름을 떨어뜨려 망치는 바람에 다시 찍은 일도 있었다. 40년이 넘는 사진 인생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들이다.

속도 경쟁에 디지털의 기습까지

서울올림픽 전후, 소득 증가로 사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늘어나 사진관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유씨 가게 주변으로 6개가 들어섰다. 그는 “흑백사진에서 컬러사진 시대로 바뀌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주변에서 ‘25분 속성 완성’ 광고간판을 내걸면 그 옆에선 ‘20분 컬러’를 내걸었다”며 “나는 그때 ‘17분 컬러’로 맞섰다”고 말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빨리 보고 싶어 하는 욕구에 부응하기 위대 당시 그는 수천만 원을 들여 첨단 장비를 들였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선 그걸로 부족했다. 더 튀어야 했다. 비디오카메라가 등장, 사진을 위협하던 때다. 유씨는 “남이 쓰는 비디오카메라를 보자마자 서울 세운상가에서 비디오카메라를 마련했다”며 “사진은 물론 비디오까지 찍어 주는 서비스로 주변 예식장 사진을 독점했다”고 말했다. 토요일엔 6건, 일요일에는 최대 10건까지 주문을 받아 주말엔 예식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유영화씨가 1978년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처음 사용한 펜탁스카메라. 임명수 기자

유영화씨가 1978년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처음 사용한 펜탁스카메라. 임명수 기자

그랬던 세종스튜디오도 디지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현대필름 코닥 후지 아그파 한일칼라 같은 쟁쟁한 회사들이 망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디지털카메라로 장비를 다시 바꾸고 늘그막에 포토샵을 구입해 편집 실력을 키울 수밖에요.”

눈부신 기술 발전 덕에 일은 편해졌다. 눈을 감았는지, 흔들렸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필름 값이 더 이상 들지 않으니, 연속 촬영으로 찍고 그중 잘 나온 하나를 골라내기만 하면 됐다. 이 이야기는 사진사가 없어도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이야기. 그러나 얄궂은 이 상황은 유씨를 북변동에서 사진관을 더 열 수 있도록 했다. 장소와 소품을 갖추고 다양한 손님들을 맞으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빛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결은 피사체 '다루는' 능력

“사진이 홍수를 이루면서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나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이 셔터를 누르는 렌즈 앞에서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지기 마련. “손님들이 오면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어디서 왔어요? 어디에 쓸 사진이에요? 모두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최고의 사진을 건져 올리기 위한 일종의 바닥 다지기 작업이죠.”

오랜 사진사 생활 덕분에, 이게 지금까지 사진관을 할 수 있는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는 “사진 찍을 때 ‘여기 보세요’가 아니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 이쪽, 고개를 이쪽으로 조금 더, 아이고 너무 갔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조금’ 식으로 한 컷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손님들에게 끊임없이 주문한다”며 “짜증을 내는 손님들도 있지만 인화된 사진을 보고 예외 없이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 김포시 북변동에서 42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 고영권 기자

경기 김포시 북변동에서 42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 고영권 기자

이외에도 그는 획일적인 구도 타파에 앞장섰던 사진사다. 어른이 가운데 앉고 그 좌우로 늘어선 일렬횡대가 주를 이루던 가족사진에 높낮이를 주고 좌우 균형을 깨뜨렸다. 유씨는 “‘균형이 안 맞는데, 이상하게 사진을 멋지게 만들어낸다’는 소문이 나면서 먼 동네 사람들까지 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고 회상했다.

손님은 줄고 줄어 지금은 그 숫자를 밝히기 부끄러운 수준이 됐지만, 유씨는 사진 찍는 일을 접을 생각이 없다. 매일 오전 사진관 문을 열고 나와 카메라를 만지고, 쉬는 날엔 10kg 가까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전국을 누빈다. “동네 사람들 덕분에 평생 먹고살았고, 자식들 다 키워 냈으면 됐죠. 이곳에서 찍을 수 있을 때까지 찍을 겁니다.” 노신사가 터뜨리는 하얀 플래시 위로 사람들의 웃음이 박제된다.


43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가 11일 오전 경기 김포시 북변동에 위치한 세종스튜디오에서 증명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43년째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가 11일 오전 경기 김포시 북변동에 위치한 세종스튜디오에서 증명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경기 김포시 북변동 세종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가 촬영 준비를 하면서 손님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고영권 기자

경기 김포시 북변동 세종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유영화씨가 촬영 준비를 하면서 손님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다. 고영권 기자



임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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