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이후 '판호' 발급 3건에 그쳐
오징어게임 성공에도 중국은 '철옹성'
"정부, 요소수 사태만큼의 관심이라도"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6일 국내 중견 게임사 펄어비스의 주가가 하루 만에 8.95% 급등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무려 72% 급락한 초악재에도 주가는 정반대로 흘렀다. 펄어비스 주가 상승은 다름 아닌 '검은사막 모바일'의 연내 중국 시장 출시 확정 소식에서 비롯됐다. 지난 5년간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막혔던 한국 게임의 현지 진출 소식에 주가가 화답한 모양새다. 47조 원 규모의 중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진출만으로도 상당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증권가에선 검은사막 모바일의 중국 예상 일 매출을 30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출시 예정일까지 안심할 순 없는 처지다. 언제 게임 출시가 제한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얻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화제를 모으자 중국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넷플릭스를 이용할 수 없는데도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등에선 달고나와 가면, 옷 등 오징어 게임 관련 상품이 인기리에 판매됐다.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선 달고나 뽑기를 직접 해보거나 패러디한 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술 더 떠 중국의 실시간동영상재생(스트리밍) 사이트인 유쿠는 오징어 게임을 표절한 예능 '오징어의 승리'를 제작하려다 비판에 직면하자, 프로그램 명을 ‘게임의 승리'로 바꿨다. 업계에서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최근 베이징(北京) 동계올림픽 개회식 도중 한복 논란으로 촉발된 중국과의 외교 갈등을 계기로 5년 넘게 이어진 한한령과 관련,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커지고 있다.
5년 동안 중국 '판호' 받은 게임 3개에 불과

최근 5년간 중국 판호를 발급 받은 국내 게임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17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5년간 중국 정부가 국내 게임사에서 개발한 국산 게임에 발급한 판호는 3개에 불과하다. 판호란 중국 정부가 게임과 서적 등 '출판물'에 사업 허가를 내주는 일종의 고유번호로, 판호가 있어야 중국 현지 내 서비스가 가능하다.
국내 게임사 입장에서 중국은 반드시 뚫어야 할 시장이다. 중국게임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게임 시장 규모는 2,965억 위안(약 55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게임 시장(약 20조 원)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중국 시장 진출은 '바늘구멍' 통과하기에 가깝다. 중국 정부가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따른 보복의 일환으로 한한령을 선언하면서 5년째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 통로는 꽉 막혔다. 지난 2020년 12월 컴투스의 '서머너즈워: 천공의 아레나'가 한국 게임으로는 4년 만에 처음으로 판호를 발급받았고, 지난해 2월 인디게임 '룸즈'와 같은 해 6월 검은사막 모바일이 판호를 받으면서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이후 8개월째 또다시 감감무소식이다.
판호를 받아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출시가 제한되기도 한다. 한한령 이전 판호를 받은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지난 2020년 출시 하루를 앞두고 '청소년 과몰입 방지 시스템' 필요성을 이유로 출시를 연기한 바 있다. 넥슨 관계자는 "해당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 출시가 연기된 것"이라며 "현재도 출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미디어 산업도 '철옹성'... 저작권 보호 어려워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 넷플릭스 제공
미디어 산업 분야에서도 중국 시장은 '철옹성'이다. 한한령에 따라 중국 내에서는 한국 연예인이 출연한 드라마, 영화, TV광고 등의 유통이 공식적으로 금지됐지만 불법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 자막까지 포함된 상태에서 유통되고 있다. 국내 콘텐츠의 포멧을 그대로 베껴 만든 TV 예능, 드라마도 버젓히 방영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2015년 한국 영화의 최대 수출 시장은 중국으로, 전체 수출 수익의 31.5%를 차지했다. 하지만 4년 뒤인 2019년 해당 비중은 3.1%로 쪼그라들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활로를 찾긴 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중국 정부의 '보호주의'... 허가제로 자국 산업 키워

지난 2020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서비스무역교역회(CIFTIS)의 텐센트 부스 모습.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업계에선 한한령의 표면적인 원인으로 사드 갈등을 꼽았지만, 이면엔 짙게 깔린 중국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 정책 때문이란 게 정설이다. 그간 중국은 허가제를 통해 자국 문화콘텐츠 산업을 크게 키워왔다.
실제 200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시장은 사실상 한국 게임에 의해 운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미르의 전설'과 '뮤 온라인'을 시작으로 2000년대 후반엔 '크로스파이어'와 '던전앤파이터' 등 한국 게임이 중국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세계 최대 게임사로 발돋움한 텐센트의 경우엔 한국 게임의 덕을 톡톡히 본 대표적인 중국 업체다. 텐센트는 사업 초기 한국 게임의 중국 내 퍼블리싱(유통)으로만 1조 원 이상의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자국 콘텐츠 개발을 막고 자체 콘텐츠로 막대한 로열티 수입만 가져간 한국 업체는 '눈엣가시'로 보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눈치만 보는 게임·미디어 등 콘텐츠업계... "사실상 반포기 상태"

지난 2017년 3월 30일 경북 성주군 사드(THAAD) 기지에 사드 발사대와 관련 장비들이 배치돼 있다. 배우한 기자
이렇게 진행됐던 양국 간 게임 시장 교류는 사드 충돌로 정지된 상태이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개별 기업 차원에서 비즈니스를 진행시키긴 어렵기 때문이다.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한한령 이전에는 그래도 중국 방송사가 판권을 사가는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이후에는 아예 그대로 콘셉트를 베껴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중국 시장은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판호와 관련해서는 국내업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보통 대부분의 게임사가 중국 퍼블리셔에 판호 발급을 일임하고, 결과가 어떻든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넷플릭스코리아 관계자는 "창작자들의 노력이 담긴 소중한 콘텐츠의 불법 복제 및 다운로드가 매우 안타깝다"며 "전 세계 다양한 모니터링 기관과 협력해 불법 콘텐츠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손 놓은 정부... 대선후보 공약에도 '판호 문제'는 실종

지난 15일 대구시 동성로에서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왼쪽)와 같은 날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거점 유세에서 인사하고 있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연합뉴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모색해야 할 우리 정부의 방관자적인 태도에 대한 부정적인 지적은 적지 않다. 지난 1년간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의 대응 또한 사실상 전무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베이징올림픽 개막 전인 지난달 2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을 계기로 다양한 교류 채널을 통해 한한령과 관련한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밝혔지만 이른 시간 내 결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여야 대선 후보도 '이대남(20대 남자)'을 사로잡겠다며 게임 관련 공약을 쏟아냈지만, 판호 문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에 출연해 "중국의 보호주의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한한령에 대해 "불공정무역 행위"라고 꼬집었지만 구체적인 공약은 '제로(0)'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대 교수는 "판호 문제는 정부가 요소수 사태 당시에 보여줬던 정도의 외교적 관심만 있었다면 의외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며 "중국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공정한 경쟁을 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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