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이 공익사업을 위해 토지를 수용했다가 계획이 변경돼 수용 필요성이 사라졌는데도 이 사실을 원래 땅 주인에게 10년 넘게 쉬쉬하면서 환매권(땅을 되살 수 있는 권리) 행사를 가로막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구례군은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다"면서도 "이미 환매권 소멸 시효가 끝났다"며 토지 원소유자의 환매 요구를 거부했다. 원소유자 측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며 반발, 구례군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 구례군이 어설픈 행정으로 재정 손실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구레군 등에 따르면 구례군은 2007년 3월 22일 A씨로부터 광의면 방광리에 있는 논 2개 필지 306m²를 사들였다. A씨는 당시 구례군이 추진하는 방광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부지에 자신의 논이 포함되자 보상 협의에 응해 손실보상금 800여만 원을 받고 토지 소유권을 넘겼다.
하지만 구례군은 6개월 뒤인 같은 해 9월 5일 사업 시행 계획을 변경해 해당 토지를 사업 부지에서 제외시켰다. 이 과정에서 구례군은 A씨에게 의무적으로 통지해야 할 환매권 발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현행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은 사업시행자는 환매할 토지가 생겼을 때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을 환매권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씨는 2014년 구례군에 수용당한 땅이 사업 부지로 활용되지 않고 쓰레기만 쌓인 채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구례군은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줄곧 사업 변경 사실을 숨겼다. 구례군이 추진한 방광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이미 2009년 12월 준공된 터였다. A씨는 지난해 4월 구례군의 거짓말에 속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구례군에 정식 민원을 내어 해당 토지를 자신에게 매각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구례군은 또다시 A씨의 민원을 8개월간 뭉개고 있다가 이달 9일에서야 "환매 절차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해당 토지는 환대 대상이긴 하지만 토지보상법상 환매권 소멸 시효(10년)가 2017년 9월 4일로 끝났다는 게 이유였다. 구례군은 그러면서 공익사업의 폐지나 변경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취득한 토지가 필요하지 않게 되면 토지 취득일부터 10년 이내에 토지를 환매할 수 있도록 규정한 토지보상법(제91조 제1항)을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이 법률 조항은 2020년 11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가 환매권 발생 기간을 일률적으로 10년으로 정한 현행법은 토지 원 소유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 국민권익위원회도 2013년 자치단체가 미흡한 행정처리로 인해 환매 기간을 놓쳤어도 수용된 토지를 원소유주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러나 구례군은 "법을 어겨가며 환매 절차를 밟을 수는 없다", "다른 사업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버티고 있다. 이에 A씨는 "구례군의 환매권 통지 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환매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기로 했다. 구례군 관계자는 "환매권 통지 의무를 게을리한 것은 맞지만 현행법상 환매 기간이 지난 상황이어서 A씨의 환매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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